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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비전2030과 한나라당의 ‘올드비전’

등록 2011-07-20 19:17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노무현 정부는 임기를 1년 반 남겨둔 2006년 8월30일 ‘비전2030’을 발표했다. 국가발전 장기종합전략을 담은 야심 찬 보고서였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선언서’ ‘1100조원짜리 장밋빛 청사진’이라며 비전2030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결국 비전2030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명박 정부 임기 1년 반 정도를 앞둔 엊그제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뉴비전 보고서’를 발표했다. 복지와 분배 강화를 공식 선언하고, 복지 재원 조달을 위한 증세의 필요성까지 명시했다. 감세를 기조로 하는 보수정당으로선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다.

뉴비전은 언뜻 보면 내용 면에서 비전2030을 많이 닮았다.

비전2030은 단순한 복지정책으로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복지와 성장을 아우르는 ‘동반성장정책’이었다. 뉴비전은 출발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비슷하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선진화, 즉 성장에 치중했던 전략에 복지를 추가해 ‘선진복지’란 개념을 도입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겨 중도를 지향한 것이다. 중도서민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과 중도보수층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은 “내년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비전”이라고 폄하했지만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전2030은 복지지출을 2030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나라당의 뉴비전은 이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노무현 정부보다 10년이나 이른 2020년에 오이시디 평균 수준의 복지 지출을 하겠다고 밝혔다. 복지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가뜨린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어떻게 변명할지 궁금하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점에서는 양쪽이 똑같다. 뉴비전에서 밝힌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는 비전2030을 그대로 빼닮았다. 2020년의 1인당 국민소득도 비전2030은 3만7000달러, 뉴비전은 4만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단 겉으로만 보면 양쪽이 서로 ‘성장 만능주의자’니 ‘복지 망국론자’니 하는 비난을 더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나라당의 뉴비전이 5년 전의 비전2030을 일부 모방한 ‘올드비전’으로 비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뉴비전은 비전2030과 출발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전2030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깊은 고뇌가 담긴 장기전략이었다. 적어도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은 없었다. 반면 한나라당의 뉴비전은 명백히 내년 총선·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현재의 보수적 이념을 가지고는 내년 선거를 치르기 어렵기 때문에 중도 쪽으로 외연을 넓히기 위해 뉴비전을 만들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보수정당으로서는 외견상 엄청난 변신을 선언했음에도 ‘선거용 보고서’쯤으로 치부돼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더욱이 뉴비전에는 재원 대책이 없다. 비전2030은 이 점에서 비교적 솔직했다. 2030년까지의 총 소요예산을 1100조원으로 추산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 정부가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뉴비전은 전체적인 소요재원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니 재원 조달 방법도 없다. 넌지시 증세의 필요성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비전2030에 쏟아졌던 ‘증세 비판’을 피해보려는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이 없는 전략은 그야말로 ‘장밋빛 청사진’일 뿐이다.


비전2030은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출발했지만, 오히려 그 확신에 찬 ‘진정성’ 때문에 무차별 공격을 받고 좌초했다. 반면 뉴비전은 철저히 선거용으로 기획됐다. 한나라당은 뉴비전을 가다듬어 내년 총선·대선 공약으로 내놓겠다고 한다. 그런 ‘정치적 계산’ 때문에 선거에서는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른다. 뉴비전이 설사 ‘선거용 올드비전’이라 하더라도 민주당 등 진보개혁 진영이 가벼이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진정성 없다고 헐뜯기만 하면서 손 놓고 있다간 자칫 중간층을 다 놓친다.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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