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경제개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 일가들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총 10조원가량 재산을 늘렸다고 한다. 2조원 이상의 재산 증식에 수익률이 무려 200배가 넘는 분도 있고, 재산 증가액이 무려 3조6764억원에 달하는 부자(父子)분도 있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문제는 재벌 총수들이 그 엄청난 신통력을 회사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회사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을 위해 썼다는 것이다. 회사 이익기회 유용, 소액주주 이익 편취, 편법 증여라는 국민과 언론의 비난이 일자 정부도 일감 몰아주기를 편법 증여로 과세하겠다고 서둘러 발표한 바 있으나 실행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산하 연구소와 단체를 동원한 재벌 쪽 반론도 거세다. 비록 일감 몰아주기를 하였다 하더라도 거래조건이 공정하였으며 어느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공정한 거래의 결과로 생긴 이익이므로 ‘부의 이전’이 없었고 따라서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법원마저도 재벌의 손을 들어주었다.(서울중앙지법 2011년 2월25일 판결) 회사의 사업과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업을 직접 수행하거나 자회사를 만들어 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그런데 이건 아주 특별한 연관성이니 문제다), 이미 아웃소싱하던 사업에 대해 새로이 이를 내부 사업부문화하거나 각 회사의 자회사 형태로 할 것인지 또는 다른 업체한테 아웃소싱할 것인지의 여부는 기본적으로는 경영상의 판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0조원이라는 비정상적 규모의 ‘부의 창출’을 눈앞에 보고도 공정한 거래조건이었고 ‘부의 이전’이 없었다는 재벌 연구소의 주장이나, 그 10조원은 누군가에게 분배될 것이었기 때문에 회사의 자회사에 귀속되게 할 것인지(그러면 기업과 전체 주주의 공동이익이 된다) 아니면 재벌 총수가 사적으로 출자한 회사의 이익이 되게 할 것인지는(그러면 재벌 총수 일가의 이익이 된다) 기본적으로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법원의 판결 모두 황당하기는 매일반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핵심 문제는 첫째, 1차 벤더(협력업체)를 이용한 하청기업 착취, 둘째, 모기업 이익 또는 모기업 주주 이익의 편취 문제이다. 대부분의 재벌그룹들은 1차 벤더를 설립하여 기존에 외주에 맡기던 것을 1차 벤더한테 ‘몰아주기’ 하고 기존의 하청기업들은 2차, 3차 벤더가 되어 1차 벤더에 납품하도록 함으로써 원청 재벌기업과 특수관계에 있는 1차 벤더한테 2차, 3차 벤더들이 착취당하는 먹이사슬 구조를 갖고 있다. 1차 벤더는 모기업에 ‘공정한 가격’(?)에 납품하고 하청기업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다. 그리고 2차, 3차 벤더한테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여 원가 이하의 가격을 지불한다. 원청 모기업의 문지기 노릇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일감 몰아주기’가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라는 것은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왜 재벌 연구소와 판사님만 그것을 모를까?
이때 1차 벤더가 원청 대기업의 자회사라면 하청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로 얻은 이익이 궁극적으로 모기업에 귀속되고 모든 주주의 공동이익(재벌 총수 포함)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중소 하청기업한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가 하는 공정거래 문제만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1차 벤더가 재벌 총수의 사기업인 경우에는 불공정거래 문제에 더해 대주주가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기업까지 희생시키면서 그 이익을 편취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절도와 다름없는 문제다.
만약 1차 벤더에 정상적이고 공정한 이익이 막대한 규모로 발생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모회사가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이익은 모회사와 모회사의 전체 주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만약 그 이익이 하청기업을 착취한 결과로 생긴 불공정한 이익이라면 공정거래 차원에서 하청기업한테 되돌려주어야 한다. 좌우간에 중층 하청구조를 만들어 재벌 총수의 일가가 사취할 이익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부당한 착취구조와 이익 편취구조를 가지고 동반성장을 하고 공정사회를 구현하겠다니 누가 믿을까?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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