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독일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겨울올림픽 유치를 축하합니다!” 기내 옆자리에 앉은 독일인이 말을 건넸다. <워싱턴 포스트> 첫 면에 이명박 대통령이 환호하는 사진 기사와 함께 한국이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두 기사를 나란히 싣다니 무슨 의도일까? 그런데 한국은 내부를 챙겨야 할 시점에 여전히 폭죽을 터뜨리는 이 시스템을 언제까지 굴릴 것인가?
일본의 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는 이 시스템을 “경차의 브레이크와 핸들이 장치된 채 질주하는 덤프트럭”에 비유했다. 큰일을 벌일수록 더욱 큰 재앙을 만들어내는 위험사회, 바벨탑을 쌓는 ‘근대문명’은 이제 마무리될 때가 되었다. 방학을 이용해 둘러본 독일에서는 막 ‘근대문명’을 넘어서는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독일 시민들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결단을 내렸다. 체르노빌 사고를 경험한 그들은 후쿠시마 사태를 보면서 핵발전소의 안전성은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며, 대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탈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전환을 통해 경제문제와 함께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북유럽 나라들은 더는 핵발전을 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있다. 문명 전환이 시장 대신 복지를 선택했던 북유럽에서 일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조만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순위는 자연을 덜 파괴하는 지표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그리고 역사로부터 배울 줄 아는 능력에 의해 매겨질 날이 올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2년 강을 되돌리기로 한 유럽연합(EU)의 결정과는 반대로 주요 강을 인공 유람관광지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여기에다 이웃나라에서 심각한 핵발전소 사고가 났는데도 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오이시디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날마다 살아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각지대에 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하천 공사의 역사가 깊은 독일의 강을 둘러보던 중 문득 우리 삶에서 ‘범람원’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강을 살리기 위해 범람원을 다시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영역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람도 자연도 살아가기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범람원’이란 물을 머금는 곳이다. 긴 인류사를 통해 범람원은 홍수와 가뭄을 비롯한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지대이자 조절지대로 존재해왔다. 마찬가지로 인생살이에서도 물을 머금는 곳이 있어왔다. 가정과 이웃과 무수한 ‘사회’가 그 완충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었다. 엄마들이 자녀의 성적관리자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 범람원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조그만 충격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중 범람원을 만들려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도롱뇽과 생사를 함께하셨던 지율 스님이 침수지역 ‘한 평 사기’ 운동을 시작하셨다. 강가에 살면서 이제 거의 강이 되신 지율 스님은 4대강 본류 공사는 거의 끝나가지만 자연치유력을 믿는다며 절망하지는 말자고 한다. 그러나 덤프트럭과 굴착기를 쉼 없이 가동시키려는 그 ‘시스템’이 지류에 손을 대는 일은 막아야 한다며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곧 자연신탁 시민운동을 시작하셨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산업혁명과 개발로 역사와 자연 파괴가 심각해진 영국에서 1895년께부터 일어난 운동이다. 초고속 경제성장을 한 후발주자 한국에서는 더욱 필요한 운동이다.
그가 선정한 곳은 낙동강 상류 모래강 내성천이다. 서구의 하천 전문가들이 자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되돌릴 수 없는 아름다운 모래강의 원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감탄해 마지않는 강이다. 강을 ‘살려 내버려두면’ 사람들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강이 되고 모래가 될 때, 다시 겸손하게 자연 안에 안길 때 강은 우리 곁에 살아 있어줄 것이다. 나중에라도 아이들 얼굴 보기 부끄럽지 않으시려면 우선 내성천 범람 지역에 땅 한 평 사기 운동에 동참하기를!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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