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로마 시대의 목욕탕, 중세의 대성당, 18세기의 궁궐, 19세기의 기차역. 이 건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각기 당 시대에 가장 넓은 지붕을 올린 건물이었다. 막대한 경제력과 최첨단의 기술적 노력을 쏟아부어 거대하게 담장이 둘러진 장소를 만들고 그곳에 지붕을 얹는다. 역사가 로런스 라이트는 그런 건물을 건립하는 목적이야말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고 주장한다.
카라칼라의 목욕탕은 400m 길이의 정사각형과 맞먹는 넓이로서 성 바울로 대성당의 여섯배였다. 로마 제국에서는 목욕탕이 공공 생활의 중심점이었다. 목욕은 도락을 넘어 근본적인 사회적 의무였다. 중세의 대성당은 도시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않고 위압적으로 군림하는 듯 보인다. 18세기 절대주의 시대에는 국왕들마다 경쟁적으로 궁궐을 화려하게 건축하여 국력을 과시하려 했다. 19세기에는 기차가 새로운 시대의 첨병으로 인식되면서 기차역이 인상파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떤 장소가 그런 역할을 할까? 공항이다. 국제화 시대에 공항은 외교와 교역과 통상의 관문임은 물론, 관광 여행의 출입구이자 보안과 검역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국가의 얼굴과도 같은 장소이기에 나라마다 그 건설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인천공항을 매각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와 관련된 경제적 논리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것은 결코 경제적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풍요로운 사회>로 유명한 경제학자인 갤브레이스는 미국의 대공황에 대한 책, <대추락: 1929>를 썼다. 그는 책이 잘 팔리는지 궁금해 공항 서점의 점원에게 슬쩍 물었다. “요새 나온 책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던데. 저자 이름이 갤브레이든가? 제목은 알아요. <대추락>이라는데.” 점원의 대답. “공항에서 팔 수 있는 책 제목은 아니군요.” 공항에 대해서는 해서 안 될 말이 있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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