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고대 그리스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시행되었다. 물론 성인 남성 자유민으로 국한되긴 했지만, 참정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의사를 결정했다. 그 시절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웅변이 정치적 무기로 중요했다. 그러한 그리스에서도 가장 뛰어난 웅변가로 데모스테네스를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몇 차례에 걸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를 경계하라고 그리스 사람들에게 고한 그의 연설은 그리스를 넘어 서양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되고 있다.
그렇지만 데모스테네스는 타고난 연설가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가 뛰어난 웅변가가 되리라고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발음이 명료하지 않았고 게다가 말을 더듬어 주변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는 쩔쩔매는 태도에 불분명한 목소리를 가진데다가 숨이 짧았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문장마다 잘게 끊겨 뭘 말하는지 의미조차 알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언어 장애를 극복했다. 입안에 자갈을 넣고 말하기도 하고, 달리면서 시를 크게 낭송하기도 했으며, 해변에서 거친 파도 소리에 맞서 웅변을 함으로써 목청을 키우기도 했다.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웅변기술을 발전시켜 점차 정치 역량을 높인 그는 아테네 사람들의 나태함을 질타하며 행동을 촉구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 아테네 사람답게 행동할 것입니까? 당신들은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또다른 필리포스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는 필리포스에 맞서 싸워야 할 당위성을 설파했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이 그를 뇌물 수수 혐의로 고발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되돌아와 몇몇 작은 전투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리스는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패배하며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정복하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도 늦게야 그의 주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