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그리스를 비롯하여 몇몇 유럽 나라들이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대규모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인해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려고 급박한 긴축재정을 시행하다 보니, 사회적 저항과 불안이 잇따르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부채 문제는 대부분 앞의 정권(들)이 ‘감세’라는 달콤한 인기영합 정책과 근시안적인 경기부양책(주로 대형 토목공사) 등 무절제한 재정정책을 벌인 결과 빚어진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수입은 줄어드는데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집안을 거덜내는 경우와 다를 게 없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1990년대 세 번에 걸친 소득세·법인세 감세로 세수가 크게 줄어든 반면, 장기 불황을 타개한다면서 주로 건설족의 배만 불린 대형 토목공사 등과 같은 무절제한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지출은 크게 늘려 재정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일본이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미국 사례는 더욱 분명하다. ‘보수주의 혁명’의 기치를 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 취임하자마자 ‘부자 감세’를 하고, 지출 면에서는 ‘강력한 미국’을 내걸면서 국방비를 크게 늘려, 재정적자와 국채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레이건 이전에 미국 국방비는 연 3천억달러 미만(이 자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이었는데, 레이건 시절 가볍게 4천억달러를 넘어섰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간신히 국방비를 다시 3천억달러 아래로 줄이는 등 재정 건전성을 위해 노력한 결과 그의 임기 말년에는 재정적자를 없애고 국가부채도 안정적인 규모에서 관리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 이후 미국 재정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클린턴 때 4조~5조달러였던 국가부채가 부시 정권이 끝날 무렵 10조달러를 넘어버렸고, 매일 늘어나는 국채 증가분이 무려 40억달러나 된다. ‘부자 감세’로 수입은 줄고, 이라크 전쟁비용 등으로 국방비가 크게 증가하여 나라살림은 엉망으로 망가졌다. 그런 유산을 넘겨받은 버락 오바마는 매우 불행했다. 집권 첫해인 2009년 연방 재정적자는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넘은 1조4200억달러를 기록했고, 국가부채는 12조달러에 육박했다. 지금 미국 국가부채는 14조5천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나라살림이 이 모양이 되면 경제위기가 오더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펼 여유가 없다. 대통령 후보 시절 ‘텅 빈 머리’라고 조롱을 받았던 조지 부시가 버락 오바마에게 넘겨준 ‘치명적 유산’이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경제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나면 이자지급액이 늘어나고, 그 늘어난 이자지급액은 다시 재정적자 악화와 국가부채 증대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결국 그 악순환은 폭발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심각한 경고를 보냈다. 부시가 ‘텅 빈 머리’라는 조롱에 더하여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받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나라의 곳간을 텅 비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스·일본·미국의 사례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부자 감세’와, 건설족 배만 불리면서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 등으로 한국의 재정도 심각해지고 있다. 올 들어 불과 3개월 만에 일반정부와 공기업의 부채가 50조원을 넘게 늘어났다. ‘부자 감세’로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줄어드는 세수만 100조원 가까이 되는 반면, 4대강 사업 등으로 정부와 공기업의 부채는 크게 늘어났다. 빚의 크기도 크기려니와 그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그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특히 미래 세대인 젊은이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 교육,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국민의 ‘사람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국가 재원이 커다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미국 경제학계에서조차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공급 경제학’을 붙잡은 채, ‘감세는 생산의 증대로 이어진다’는 주술을 외우면서 ‘부자 감세’를 놓지 않고 있다. 미래 세대와 국민에게 ‘치명적 유산’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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