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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무상교육으로 공공의 감각을 되살려낼 때

등록 2011-06-16 19:12수정 2011-06-16 22:02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반값 등록금과 대학이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대학은 왜 침묵하나”, “교수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교수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도 꽤 보인다. 함께 해법을 만들어 가기 위한 공론의 활성화를 위해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나누다 보면 좋은 방안이 찾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은 국가가 대학 등록금을 대폭 지원하면서 청년들을 축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학점 등으로 조건도 달아서는 안 되고 차등을 주어서도 안 된다. 차등 급식이 가장 좋지 않은 분배의 방식이듯이, 차등 복지는 사람을 등급화하면서 무시와 모욕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지원 액수를 말해보라면,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없는 학생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 스스로 기본 생활을 꾸려가면서 학비도 충당할 수 있는 정도면 될 것이다. 비싼 부담금으로 청년들 상당수가 빚을 지고 사는 미국 사례를 들면서 학비는 자부담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나는 그런 식으로 대학이 운영되면 노예노동자만 양산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서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다던 변호사와 환자를 정성껏 돌보겠다던 의사가 빌린 학자금을 갚기 위해 원치 않은 곳에서 오랫동안 돈벌이를 하던 것을 종종 보았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혈혈단신으로 개척하는 삶을 자부심으로 삼아온 미국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학 등록금에 관한 한 한국은 북유럽의 모델을 따르는 것이 맞다.

  특히 현재 대학생들은 90년대 학번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얌전하게 학교를 다니며 자기 마음대로 해본 일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제대로 먹고살 길이 없으니, 이탈을 했다가는 잘살 것 같지 않아 늘 ‘주류’에 있고자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나라 고등학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을 갔고 이들은 나라가 만든 학교를 12년이나 다닌 온순한 국민들이다. 나는 이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입시공부를 야자 시간에 립싱크하는 유시시를 만드는 정도의 장난을 치면서 -그런 정도의 저항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고스란히 12년간을 버틴 것이 신통하고, 크게 자학적이거나 폭력적인 존재가 되지 않은 것이 고맙기만 하다. 자율성도, 독립적 탐구의 기회도 가져보지 않았던 이들이 고스란히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그 학비는 당연히 그렇게 키운 국가와 가족이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가족이 그 짐을 전적으로 부담해왔지만 이제는 정부가 그것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대학과 정부는 이 젊은 국민들을 축복하면서 서로 협력해서 잘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은 그 학생들을 잘 키울 준비가 되어 있나? 이른바 명문대학들은 글로벌 초경쟁에서 도태될 것을 두려워하며 ‘세계 100위권’에 들고자 맹렬하게 뛰고 있다. 교수들은 논문 편수를 늘리고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강의를 해야 하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장기적인 비전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기보다 통계 평가가 가능한 지표를 만들어놓고 돈 나누어주기에 급급하다. 대학 당국은 “우리 대학의 평가 및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 운운하면서 피상적인 개혁만 계속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학일진대 점점 더 순위에 집착하는 경향은 여전히 종주국이 있어주길 바라는 식민지성에서 오는 것일까? 명문대에 몇명을 보내는지에 희비가 갈리는 고등학교 교육을 비판했지만, 지금 대학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같은 상황이다. 이래저래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가 된 학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저런 것을 따지기 이전에 스스로를 ‘찌질이’라고 부르게 된 세대를 끌어안으며 모두가 함께 ‘공공’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가야 할 때다. 우리 사회 복지의 근간이 허약하여 무상 급식이 불가피하듯, 한 80%의 세대가 대학 외에 갈 곳이 없는 지금, 대학 무상교육이 실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한 청년들에 대한 획기적인 방안도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년들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던져야 할 때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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