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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겸손이라는 무기

등록 2011-05-30 20:43수정 2011-05-30 20:49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죽기 직전에 발간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중세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받으며 오랜 세월을 지배해왔던 천동설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이에 빗대어 칸트가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결합시킨 자신의 획기적인 철학적 체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표현했을 만큼 지동설의 정립은 과학혁명의 한 축을 확고하게 담당하고 있다.

그 정도로 도전적인 업적을 남기려면 오만으로 비칠 정도로 도도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추측은 추측일 뿐, 코페르니쿠스의 전략은 겸손함이었다. 그는 진리란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자신이 내세우는 바는 단지 가설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겸손함은 곧 무기가 되었던 것이니, 바로 그 순간 천동설 역시 하나의 가설로 비하되었던 것이고, 두 가설 중 자신은 더 정확한 지동설을 택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백과전서파에게도 겸손함은 예리한 날을 감춘 칼이었다. 계몽사상가들 최대의 업적은 <백과전서>였다. 그들은 겸손함을 표방하며 절대왕정과 그것을 지탱시켜주던 이론적 근거인 왕권신수설을 은밀하게 공략했다. 왕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감히 넘볼 수 없다는 그 논리에서 만일 신이 없다면? 방법은 무신론을 논증하기만 하면 가능한 것이었다. 신이 없다면 곧 왕권의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택한 무기는 가시 돋친 능변과 달변의 비판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지식을 분류하며 그 기준으로 경험론을 택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눈과 귀와 같은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만을 우리는 알 수 있다고 소박하게 진술한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다. 그 논리적 결과로 누구도 본 일이 없는 신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지식의 영역에서 축출되었고, 신학은 미신과 같은 부류로 격하되었다. 그와 함께 왕권의 근거도 희미해졌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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