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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6·11, ‘탈원전’ 행진이 시작되는 날

등록 2011-05-19 22:17수정 2011-05-25 15:51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달이 될 즈음에야 ‘슬로 라이프’ 운동가인 쓰지 신이치 선생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3·11 사태 이후 집중도 안되고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한결 맑아진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는 엑스레이를 통과하였고, 많은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나의 일부, 그리고 지구의 일부가 죽었고, 그 주검은 지금 우리 곁에 있습니다.”

현장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동북부 지역이 지금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있다. 복구작업이 진행중인 자연재해 지역에는 전국에서 자원활동가들이 몰려왔으며, 주민들은 피난소에 모여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개별 이주보다는 커뮤니티로 함께 이주하자” “지역을 재생에너지로 거듭나게 하자”는 등의 구상을 나누면서 날로 활기찬 기운이 뻗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은 방사능의 공포 속에 고립되어 있으며, 미래가 없는 죽음의 땅에서 분노만 삭이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원전 사고 원인을 천재지변으로 돌려보려는 도쿄전력, 우유부단하게 눈치만 살피는 정부, 원전의 위험에 대해 의견 차이만 반복하고 있는 과학기술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민들은 지옥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것인지 지옥으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일본 시민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첫번째 디데이는 6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재해 발생 3개월이 되는 날. 쓰지 선생은 사람과 자연을 상하게 하는 전력은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탈원전 100만인 집회’를 열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혹자는 집회를 해도 대안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실제 대안이 없는가? 덴마크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핵 대신 재생에너지를 택했고 그 결과 ‘핵쓰레기장’이 될 위기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후기 근대에 적절한 투자와 과학기술, 그리고 일자리 창출로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다. 당시 덴마크 정부는 원전 건설을 추진하려 했는데 시민들이 그 방향을 바꾸었다.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직후 원전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미국은 청정에너지원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가 발전량의 3분의 1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린피스는 2050년까지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세계 에너지의 77%를 공급하게 될 가능성을 예측하였다. 이와 동시에 패시브 하우스 등 에너지를 줄이는 획기적인 건축 방식과 라이프스타일들이 나오고 있어서 지구 에너지의 대안적 해결이 크게 가능해지고 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실은 몸이 고삐 풀린 시장의 속도에 휘말려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연달아 터지는 재난 뉴스, 날로 바빠지는 일정과 그간에 쌓인 집회의 피로감이 일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6월11일을 살아있는 날의 시작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간을 신의 자리로 등극시킨 ‘근대’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고, 우리는 지금 그 재앙의 경고를 듣고 있다. 우리가 누려온 풍요는 지구적 재앙과 후대의 불행을 담보로 한 것이었음을 이제는 인정하자. 이제 다시 신 앞에 겸손해진 존재로 시대를 학습하고, 경쟁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죽음의 땅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자. 그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도 하자. 그래서 6·11 모임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야 할 것이다. ‘원전 정지!’를 제창하고 묵념을 드려도 좋고, 관련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지어 부르고, 걸개그림을 그려도 좋다. 태양열이나 자전거로 전기에너지 만드는 실험을 한다면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할 것이고, 연둣빛 옷을 입거나 스카프로 동참의 뜻을 드러낼 수도 있다. 각자의 모임을 유시시(UCC)에서 나눌 수 있다면 또한 큰 힘이 될 것이다.

즐거운 시위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지구를 살리는 든든한 일꾼이 되어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상쾌해진 아침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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