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식민지 시절, 매사추세츠는 청교도 엘리트가 지배했다. 그곳이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는 것은 <주홍 글씨>라는 소설만 봐도 짐작이 간다. 그런 곳에서 앤 허친슨이라는 여성이 성경 모임을 열고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설파하여, 점차 남성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여 여성의 권리를 옹호했고, 미 대륙 원주민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에 반대했다. 특히 아담과 이브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거부했다. 그것은 원죄의 굴레를 여자에게 씌워 청교도 사회의 극단적 가부장 중심 체제를 정당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일요일마다 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늘며 영향력이 커지자 청교도 지도자들의 도덕적·법적 권위와의 충돌이 격해졌다. 그들은 그에게 이단의 꼬리표를 붙이고 목회자에 대한 무고죄로 재판에 회부했다. 마흔여섯의 나이로 열다섯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그가 여러 날에 걸쳐 남성들로 구성된 재판관 앞에서 심문받았다. 여성들이 그의 모임에 참가하여 가사를 게을리함으로써 아버지들의 공화국에 반역을 조장한다는 것이 죄목의 하나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스스로를 잘 변론했지만, 이미 결정되어 있던 판결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당신들이 내게 행한 짓으로 신은 당신들과 후손과 나라 전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마지막 진술에 한 목사는 “당신은 아내라기보다는 남편이고, 교인이라기보다는 설교자”라고 응수했다.
추방당한 허친슨이 백인들과 분쟁을 벌이던 인디언에게 살해되자 청교도 지도자들은 신의 섭리가 구현됐다고 말했다. 그가 <주홍 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실제 모델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350년이 지난 1987년에야 사면받았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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