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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빵과 상징

등록 2011-05-04 19:58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에 의해 불붙은 종교개혁이 스위스로 번졌다. 스위스는 캉통(캔턴)이라는 13개 자치구역의 연맹국가였다. 어떤 캉통은 개신교를 받아들였고 어떤 캉통은 가톨릭을 고수했다. 궁극적으로 스위스는 내전을 겪었지만, 그 결과 각 캉통은 자체의 종교를 결정한다는 원리가 확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츠빙글리는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 캉통의 연합을 이끌던 인물이다. 그는 원칙적으로 루터의 교리에 동의하며 개혁의 노선에 나섰다. 즉, 성서에 직접적 언급이 없다면 그 어느 것도 믿거나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면벌부, 단식, 화체설, 성인 숭배, 성직자 독신주의 같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종교 제례를 거부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의 생각이 마르틴 루터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스위스와 독일의 개신교도들이 힘을 합친다면 좋은 결과가 산출되리라는 생각에 한 백작이 그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동의하던 그들이 단 한 가지 차이 때문에 앙숙이 되었다. 그것은 성찬식의 빵에 크리스트가 함께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였다. 츠빙글리는 빵에 크리스트가 영적으로만, 즉 상징적으로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반면 루터는 크리스트가 영적으로 존재하는 곳에 육체적으로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루터는 츠빙글리를 광신도라고 공격했고, 츠빙글리는 루터가 중세의 성사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난하며 헤어졌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내전에서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 1531년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포로가 된 그는 47살의 나이로 처형당했다. 그의 유골은 네 개의 바람에 나뉘어 흩뿌려졌다. 유골조차도 그의 추종자들을 고무시켜 다시 세를 결집시킬까 두려워해서였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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