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듯 <군주론>은 저자 마키아벨리가 공직에서 추방당한 이후 복직을 기대하며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 저작이었다. 그 책의 서문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충정을 과시하는 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주제를 묘사하고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세련된 미사여구, 과장된 단어나 고상한 표현법, 또는 외관상 아름다움을 위한 심심풀이 기교 따위로 이 책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마키아벨리는 주제 자체의 중요성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수사학적인 눈속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 사상의 역사에서 철학에 비해 수사학적 전통이 받아온 푸대접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관한 본질적인 내용을 논하기에 우월한 반면, 수사학은 외양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피상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역사 속의 모든 시기가 위대한 철학의 시대는 아니었다. 수사학이 강력하게 부각된 적도 있는데, 르네상스가 바로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마키아벨리가 수사학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세심히 살피면 그가 수사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수사학은 남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는 분야이며,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수사학의 시대임이 확실하다. 성형수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연예인 기사나 연예 프로그램이 중요한 뉴스이며, (일부) 정치가나 목회자가 말장난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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