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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특이한 판결

등록 2011-04-20 20:08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상투화된 문구로 단순화되어 널리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문서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282개조에 달하는 법 조항 중 몇몇은 다음과 같이 특이한 사례를 언급한다.

어떤 사람이 물건을 분실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어 소송이 벌어진다. 그 물건의 현 소유자는 “상인에게서 샀는데, 증인들 앞에서 값을 지불했다”고 말한다. 원래의 소유자는 그것이 그의 재산이었음을 말해줄 증인이 있다고 한다. 판결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것은 증인의 유무와 증언의 신빙성에 근거하여 내려진다. 증인을 데려올 때까지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구입자가 판 사람과 증인을 데려오지 못하고 원 소유자가 믿을 만한 증인을 데려온다면, 구입자가 도둑으로 사형을 당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잃어버렸다는 주장이 무고죄가 되어 그가 사형에 처해진다.

문제는 양쪽에서 모두 증인을 데려오고 그들의 증언을 믿지 않을 수 없을 때 생긴다. 자, 이럴 경우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결론은 물건을 판 상인이 도둑이어서 그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원 소유자가 그 물건을 갖고, 구입했다는 현 소유자는 상인한테서 지불했던 금액을 돌려받는다.

함무라비 법전은 같은 범죄에 대해서 계급마다 형벌이 차등적이고, 고의와 과실을 구분하지 않고 결과만 보고 형벌을 정한다는 이유로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지만 증인과 그들의 말을 검증하고 그것에만 바탕을 둬 논리적 판결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그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는 것보다 훨씬 더 현대적으로 보인다. 두말할 나위 없이 더 인간적이기도 하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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