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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대왕의 자격

등록 2011-04-04 20:12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지배할 무렵, 그리스의 지도자들이 코린토스에 모여 알렉산드로스를 페르시아 출정군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그는 부왕 필리포스가 영토를 넓힐 때마다 자신이 정복할 땅이 줄어든다고 한탄하던 야심만만한 젊은이였다. 필리포스의 암살 뒤 군의 통솔권을 거머쥔 그에게 수많은 정치가·학자·예술가들이 찾아와 인사했다.

코린토스 부근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살았다. 통을 하나 얻어 그곳에 살던 그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조롱했다. 축제는 바보와 광대의 잔치, 시민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가는 천박한 사람들의 하수인이라고 말했다. 한 부자가 호화로운 저택에 초대했다. 디오게네스는 주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침을 뱉을 곳이 그곳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온갖 허식을 거부하고, 인간은 가장 자연스런 욕구만을 충족시킴으로써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천했다.

권력자·학자·예술가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기에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도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오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오히려 몸이 달아 그를 만나러 갔다. 알렉산드로스가 먼저 인사를 하며 뭘 해줄지 물었다. “햇볕을 막지 말고 조금 비켜주시오.” 이렇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케로네아(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부왕 필리포스에게 포로가 되어서도 누구냐고 묻는 말에 “당신의 탐욕을 증언할 사람”이라고 답했던 그에게 아들의 위엄은 하찮은 허상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디오게네스를 찬양하는 이 일화에서 나는 이 한마디에 주목하며 알렉산드로스가 대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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