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에리히 아우어바흐(1892~1957)는 독일 베를린 출신 유대인으로, 문헌학·문학사·문학비평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거의 모든 나라의 중요 작가들이 그의 시각을 거쳐 새롭게 해석되었다. 수많은 인접 학문의 성과를 결합시켜 대상 작가들과 작품을 세심하게 분석하면서도 그것을 아름다운 미적 취향으로 승화시켜 자신만의 또 다른 예술 작품을 창조해냈다는 것이 그에 대한 종합적 평가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 또는 작중 인물에게 보이는 아우어바흐의 인간적인 관심에 더욱 크게 끌린다. 그러한 인간적 관심은 몇몇 인용문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 인간의 저작은 그의 삶으로부터 분출되며, 인간이 삶을 통해 경험에 축적시킨 모든 것을 해석한 작품이란 결코 쇠진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최고 걸작은 <미메시스>다. 그것은 히틀러가 총통이 된 이후 1935년 터키의 이스탄불로 도피한 상황에서 완성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유럽의 문학을 그 경계에서 벗어나 ‘타자’화된 오리엔트의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 저작의 성공 요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나는 불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 더 큰 점수를 주겠다. 유럽에 비해 터키의 도서관은 자료가 빈약했다.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제한된 자료만을 읽어야 했기에 오히려 글 쓸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무릇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자세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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