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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두 웅변가의 죽음

등록 2011-03-28 21:23

약 30년에 걸친 그리스의 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과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에는 반목과 갈등이 고조됐다. 게다가 페스트까지 돌아 인심은 흉흉했고, 사람들의 도덕심마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변의 다른 나라들이 그리스를 넘봤다. 그중 가장 강력한 위협은 북쪽의 마케도니아와 동쪽의 페르시아였다.

위협에 직면한 그리스에선 대립되는 두 여론이 맞섰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를 그리스의 왕으로 받아들여 화평을 택하자는 견해와 미개한 외적 마케도니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었다. 주화론의 대표자는 이소크라테스였고, 주전론의 옹호자는 데모스테네스였다.

이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철학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마케도니아와 페르시아의 침입 위협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소크라테스의 해답은 마케도니아를 넓은 의미의 그리스에 포함시켜 그 지배자인 필리포스 2세를 그리스의 왕으로 추대한 뒤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었다. 데모스테네스는 미개인으로 멸시하던 마케도니아 사람을 그리스의 왕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그리스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리포스에 결연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방법은 달라도 그들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놓고 경쟁을 벌인 셈이었다.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패배하여 그리스가 멸망한 뒤 이소크라테스는 아흔여덟의 나이로 식음을 전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데모스테네스는 그리스를 구하려는 최후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뒤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정치가들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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