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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개인의 결단과 지구적 변화

등록 2011-03-22 20:28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꼭 10년 전 미국 하버드대 학생 48명은 총장실이 있는 매사추세츠홀로 진입했다. 대학 설립 이래 최초의 총장실 점거 농성은 3주간 계속됐다. 건물 밖 잔디밭에는 이들을 응원하는 학생·교수·교직원이 농성하는 텐트촌이 형성됐다.

최상류층, 최고 연봉이 보장된 이 학생들의 요구는 놀랍게도 청소·경비·식당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보장이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대학교를 관리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었다. 처음엔 학생들을 테러리스트라며 외면했던 학교 당국은,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바짝 긴장했고, 결국 3주를 꼭 채운 날, 대부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하버드대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학교 밖 청소·식당 노동자 일반으로 확산됐다. 이듬해 행동에 나선 로스앤젤레스의 노동자들은 2년 만에 25%의 임금 인상을 이뤘다. 켄 로치 감독이 생활임금과 최소한의 품격을 위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 <빵과 장미>가 개봉된 것도 이때였다. 우리의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이 느슨한 형태로나마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확보 투쟁을 지원하고 나선 것의 뿌리도 이 사건이다.

충격을 받은 이 대학 종교학과 브라이언 파머 교수는 그해 가을 ‘개인의 선택과 지구적 변화’라는 강좌를 개설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명사들을 초청해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 강좌였다. 유형은 다르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좌 ‘정의란 무엇인가’의 원형에 가까운 것이었다. 강사진은 역사학자 하워드 진,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신학자 하비 콕스, 윤리학자 피터 싱어, 정치학자 로버트 라이시 등 당대의 명사들로 짜여 있었다.(2004년 번역 출간된 <오늘의 세계적 가치>가 강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학생들이 빼놓지 않고 던진 질문은 이랬다. 당신의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오늘의 시대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하워드 진 교수는 자유주의에서 급진주의로 돌아선 계기에 대해 한 집회에서 경찰에게 두들겨 맞아 졸도한 일, 케네디 등 자유주의 성향의 대통령조차 바꾸려 하지 않다가 결국 대규모 시위에 밀려 인종차별 정책을 종식시킨 사건을 꼽았다. 노엄 촘스키 교수는 패배하는 쪽을 옹호하는 일에 평생 헌신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는데도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세상에 충격을 받은 일을 꼽았다.

일본 도호쿠 지방이 지진해일에 초토화된 지 열하루가 지났다. 좌절에서 일어나 복구의 삽질에 나설 때도 지났다. 그러나 일본열도 전체는 여전히 질식할 듯한 긴장 속에 묻혀 있다. 낙진은 물론 채소·우유·물고기 등까지 오염시킨 방사능 공포 탓이다. 복구 운운할 계제가 아니다. 오로지 매달리는 것은 파괴된 원전의 안전한 폐쇄이지만, 그마저 신통치 않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원전을 만들 줄만 알았지, 안전하게 해체할 방법은 모른다. 수천 수만 톤의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게 고작이지만, 그렇다고 방사능 누출을 완전 차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40여년간 에너지를 제공한 대가로 원전은 인간에게 생명 자체를 요구한다.

이 명확한 사태 앞에서 우리는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 도쿄전력 사장이나 할 법한 말을 우리 대통령이 하고 있으니 우리 각자 나서는 수밖에 없다. 효율, 편리, 속도, 풍요, 이윤 따위의 주술을 버려야 한다. 좀더 불편하고 좀더 가난하고 좀더 느린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덜 쓰고 덜 먹고 덜 버려야 한다. 악마의 불은 악마에게 돌려주고, 바다 개펄은 조개와 물고기에게 되돌려주고, 산은 새와 들짐승에게 돌려줘야 한다. 몇몇 하버드대생의 결단과 행동은 학교를 바꾸고 승자독식의 세상에 인간의 피가 돌게 했다. 우리 삶의 전면적 쇄신만이 이 위험한 세상을, 우리 아이들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꿀 것이다.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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