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가톨릭교회에서 주교의 자리에 명을 받은 사람은 ‘놀로 에피스코파리’라는 말을 두 번 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주교직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세 번째로 그 말을 하면 그 거절은 참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니 속으로 그 자리를 원해도 겉으로는 겸손하게 사양하는 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어떤 사람은 누가 그 말을 하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실지로 오늘날 주교직에 오르는 사람이 그 말을 하지도 않고 옛날에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표현은 허위와 위선의 함의를 품는 말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주교에 오를 사람이 그 말을 두 번 하고 주교직을 수락해야 했다면, 그것은 주교라는 높은 자리가 가져다줄 명예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고 멸사봉공의 자세로 공직에 임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원리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초기 교회 교부 철학자들의 가르침과도 유사하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언명은 교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플라톤의 주장과도 비슷하다. 플라톤은 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권력을 쥐었을 때 그것으로 무슨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설파한다. 따라서 절대적 권력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계보 속에서 나는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다른 해석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가식으로조차 ‘놀로 에피스코파리’를 말하는 법이 없는 우리의 공직자들에게 그 해석은 공허한 메아리일까?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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