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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아주 낯선, 죽음의 풍경들

등록 2011-03-01 19:12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지난 월요일치 <한겨레> 여론면은 죽음 이야기가 절반을 넘었다. 자살한 부인의 뒤를 따라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한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사설, 그에 대한 애도로 끝을 맺은 홍세화 칼럼, 삼성전자 입사 1년 만에 자살한 25살 청년의 49재를 맞아 민주노총 위원장이 보낸 진혼가, 여기에 살처분당한 구제역 가축 이야기도 있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한겨레는 밥상머리에 죽음 이야기들을 왕창 던진 것이다. 아무리 새털처럼 가볍고 발랄한 일터로 나서는 이들이라도 달가울 리 없다. 직장만 생각하면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이들, 전쟁터 같은 취업전선으로 다시 떠밀려 나가는 젊은이들에겐 그나마 용을 써서 낸 용기마저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물정에 대한 무지가 부른 만용일까. 아니면 그들과 가족에게 닥친 불행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미래이고, 또 비무장지대에 깔린 지뢰처럼 우리 사회가 죽음의 올무로 뒤덮여 있다고 보는 걸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새벽부터 죽음 이야기를 무더기로 올려, 아침상을 제사상으로 만들 순 없는 일이다.

그날 한겨레 1면은 쌍용차 파업사태를 전후해 지금까지 숨진 종업원과 그 가족 12명의 사인을 간단히 기록했다. 파업 과정에선 부인 1명을 포함해 3명이 자살했고, 2명이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했다. 파업 타결 뒤엔 자살 4명, 심근경색 등으로 3명이 죽었다. 이들처럼 복직을 기다리며 무너져가는 무급휴직자는 450명이라고 했다. 그와 비슷한 수의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죽음보다 복직이 먼저 이루어질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이들이다.

도대체 이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노동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정규직이라고 언제고 닥칠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직장인, 열에 셋은 3년 만에 문을 닫아야 할 운명이라는 자영업자라면 그렇게 묻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존엄성, 인간성의 고결함을 믿는 사람이라면.

뒤늦은 고백이지만, 한 ‘유망한’ 시나리오작가의 죽음이 나에겐 지독히도 낯설었다. 국회의원과 정부까지 나선 사회적 관심은 더 낯설었다. 학비 때문에 피자 배달을 하다 차에 받혀 죽은 아이들의 죽음 속에서 그의 죽음은 아주 특별했다. 그는 이웃집 문에 쪽지를 붙일 게 아니라 문을 두드려야 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라도 걸어야 했고 피자 배달이라도 해야 했다. 게다가 그의 죽음이 다른 이들의 사회적 죽음을 가려버리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를 보도한 한겨레는 바로 그날 한 축산농가 가장 이야기를 실었다. 농장 목부로 시작해 30여년 만에 27마리의 작은 농장 주인이 되었고, 장애가 있긴 했지만 아내도 있고 늦둥이 아들도 둔 작은 행복의 문턱에 선 이였다. 그러나 구제역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양성 판정 소식을 들은 그는 한동안 목놓아 통곡을 하다가 쇠죽을 끓여 소들에게 골고루 나눠 먹인 뒤 집을 나서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명백한 사회적 죽음 앞에서 그를 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그의 작은 꿈을 짓밟은 것은 당국의 무능과 부주의였다. 그건 언제라도 나와 내 가족에게 덮칠 수 있는 것이었다. 황당한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쏟고, 판타지나 다름없는 연예인 명망가의 죽음에 넋을 놓으면서, 왜 또 이런 사회적 죽음에는 무관심한 걸까.

아우슈비츠의 기획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신 앞에서는 유죄이지만, 이 법 앞에선 무죄다.” 검사는 그의 죄를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은 죄, 이것이 피고의 진짜 죄”라고 탁월하게 정리했지만, 이보다 더 명징한 것은 한나 아렌트의 규정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죄! 다만 희생자를 타자화한 것은 잘못이다. 이웃은 우리이지, 타인이 아니다.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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