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특이한 세계가 아니라면 인간 사회는 남녀 비율이 대략 반반이다. 그렇게 구성된 세상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조건에 맞춰 일을 분담하며 삶을 영위했고, 그리 이어진 삶이 곧 역사가 되었다. 하여 역사를 만든 원동력의 절반쯤은 여성에게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책을 보면 여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의 성장으로 역사 속 여성의 몫을 밝히려는 시도가 늘어나긴 했지만 정착하기엔 아직 먼 길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던 과정을 봐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남자들이 했다. 정치와 전쟁 같은 ‘중요한’ 일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산모에게서 신생아를 받는 일까지도 남자의 영역이었다. 대니얼 코니라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의사는 1787년 8월 아이를 받으면서 겪은 상황을 매사추세츠 의사회보에 보고했다. 그 글에는 산모를 제외하곤 어떤 여자에 대한 언급도 없다. 마치 남성 의사가 여성 산파를 완전히 대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서 밸러드라는 한 산파가 1785년부터 1812년 사망할 때까지 27년에 걸쳐 일기를 썼다. <산파 일기>라는 제목의 우리말로도 출판된 이 책을 보면 코니가 보고서를 썼던 바로 그해에 마서 혼자서 그 지역 출산의 60%를 맡았고, 그가 유일한 산파도 아니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확실히 여성이 주도했다.
게다가 그 일기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도 여성의 필수적인 역할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것 역시 8년에 걸쳐 일기를 꼼꼼히 읽고 행간을 헤아려 2세기 전 여성 모습을 되살린 여성 역사가 로렐 대처 울리히 덕분이었다. 이런 문제를 다룰 남성 역사가는 없을까?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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