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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당나귀가 죽었다

등록 2011-02-23 20:39

당나귀가 죽었다. 굶어 죽었다. 그런데 먹을 것을 앞에 놓고 굶어 죽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뷔리당의 당나귀’라고 알려져 있는 이 우화는 사실 중세 말의 신학자 장 뷔리당보다 연조가 깊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떨어져 있자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몰라 움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 이야기에서 사람이 당나귀로 바뀌었다. 당나귀가 물통과 건초 더미에서 똑같은 거리에 떨어져 있다. 당나귀는 더 가까운 쪽으로 움직일 텐데 정확하게 똑같은 거리에 있으니 선택을 하지 못하고 결국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먹음직스러운 두 더미의 건초 사이에서 결정을 하지 못해 결국 굶어 죽었다는 변형도 있다.

뷔리당에게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뷔리당의 글에 이 사고실험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뷔리당의 당나귀’라 이른다. 우리의 지성 앞에 놓인 ‘선’들 중 우리는 ‘더 좋은 선’을 필연적으로 선택한다는 그의 철학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당나귀의 우화로 인해 수학이 아닌 물리학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수학에는 좋은 분야가 너무 많아 짧은 인생 동안 어느 방면에서 정수를 흡수해야 할지 확실하지 않았던 반면, 물리학에서는 어떤 것이 본질적인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서 수학이 아닌 물리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한번뿐 후회하지 말고 명랑하고 씩씩하게 앞에 놓인 반짝거리는 길들 사이에서 고민해야 할 젊은이들이 절망과 더 큰 절망 사이에서 신음하도록 만드는 우리 교육은 누구의 책임일까?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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