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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여왕의 씀씀이

등록 2011-02-21 18:20

한적한 주말을 책 몇 권만으로 보낼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주저 없이 디드로의 소설을 택할 것이다. 이성의 불을 밝혀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개혁을 이룩하려던 계몽주의 시대 최대의 업적인 <백과전서>를 편찬하였음에도, 그는 이성만능주의의 한계를 꿰뚫어본 사람이었다. 이성적이고 건전한 ‘나’와 감성적이고 퇴폐한 ‘그’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라모의 조카>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두 자아의 갈등을 드러낸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18세기 프랑스에서 가능했던 거의 모든 쟁점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몽환적인 초현실주의의 세계로 독자를 몰고 간다.

저작 활동이 방대했던 디드로였지만 재산은 모으지 못했다. 문인들에게 주어지곤 했던 관직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다. 딸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관례대로 지참금을 준비해야 했으나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장서를 팔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가 디드로의 재정적 곤궁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계몽전제군주의 한 사람으로서 문인들과 교류하며 후원하던 여왕이었다.

여왕은 파리에 사람을 보내 디드로의 장서를 사게 했다. 이미 책값을 받은 디드로에게 여왕은 책을 그대로 보유하도록 지시했다. 그런 뒤 그 책들에 대한 사서로 디드로를 고용하여 급여를 지급했다. 학문의 후견인으로서 여왕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인다. 1784년 7월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디드로가 사망한 뒤 유족이 보낸 장서를 여왕은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운명론자 자크>는 1992년에 번역 출간되었으나, 어쩐 일인지 곧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절묘한 수작이 다시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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