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오해와 오판은 위기의 근원이 된다. 한국전쟁이 그랬다. 미국은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내용의 애치슨선언을 1950년 1월 발표했다. 이를 두고 소련이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일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오해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됐다고 <콜디스트 윈터>는 분석한다. 미국 또한 중국군이 한반도 땅을 밟지 않을 것으로 오판했다.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지난 2~3년 사이 아주 높아졌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대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으나 위기 구조가 해소된 건 아니다. 과연 어떤 오판과 오해가 있었을까.
첫째,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젊은 아들 김정은에게 빠른 속도로 권력 세습이 이뤄지는 상황은 몇년 전만 해도 시야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간 북한이 보인 강경한 조처들과 대화공세 모두 체제 불안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봐야 한다. 둘째, 이명박 정부의 경직된 행태다. 이 대통령은 애초 실용주의를 국정 원칙의 하나로 내세웠다. 한반도 관련 사안도 유연하게 풀어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갈수록 과거 어느 정권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셋째, 미국의 위상 저하와 소극적 태도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임기 초부터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할 거라는 전망은 진작 빗나갔다. 게다가 경제위기 등으로 위상 저하가 구체화하면서 미국의 판단력과 실천력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
결국 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일반적 예상과는 다르게 움직인 셈이다. 이것이 위기 구조를 만든 원인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지금 상황은 과거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와 조지 부시 정부의 임기 뒤쪽을 연상시킨다. 부시 정부는 6년 동안 강경정책을 펴다가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에 확실하게 대화노선으로 돌아섰고, 클린턴 정부 역시 임기 말에 미사일 문제 등을 놓고 집중적인 대북 협상을 벌였다. 이는 막연한 기대와 자신감으로 포장된 임기 초·중반의 오판과 오해를 바로잡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핵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논의구조도 더 복잡해질 것이다. 동북아의 갈등요소도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한반도 문제를 푸는 게 불가능한 이상 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가장 필요한 것은 위기 구조에 대한 현실적 인식과 해결 의지다. 이전의 시행착오들을 새 출발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당연히 우리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비전과 기획력, 주도력 등에서 모두 취약했다. 그 결과 핵 문제와 평화체제 구축 등 핵심 현안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고 한반도·동북아 갈등구조를 더 심화시켰다. 지금 정부는 모든 책임을 북한에 떠넘긴다. ‘나쁜 정권’이 모든 일을 그르쳤다는 태도다. 이렇게 사태를 호도하는 행태는 과거에도 죽 있었다. 군사정권들이 민주화 요구를 봉쇄하려는 논리가 그랬고, 지금도 정부는 자신과 관련된 인권 문제가 제기되면 북한 인권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 한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 때처럼 국제정세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진정성부터 상대에게 확신시키는 자세가 요구된다.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해 어제 열린 실무회담에서 우리 쪽은 연평도·천안함 문제만을 의제로 하자고 했다. 경직된 자세다. 북한의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서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현안을 푸는 과정에서 다양한 대화는 북한에 제공하는 혜택이 아니라 사태 진전을 위한 수단이며, 남북 정상회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상대의 잘못을 부각시킨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 구조를 평화 구조로 바꾸지 못하고 핵 문제를 진전시키지도 못한 채 임기를 마친다면, 역사는 분명 이명박 정부를 ‘나쁜 정권’으로 기록할 것이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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