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 이후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봉직했다. 최연소 부통령이었다. 베트남 종전을 이끌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미·중 외교 시대를 열었다. 소련과 탄도미사일 규제 조약을 맺어 데탕트를 주도했다.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암과 마약 퇴치를 위한 전쟁을 벌였다. 미국 남부에서 흑백통합교육을 실시했다.
이 정도면 미국의 애국자를 넘어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인물이라 칭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 그가 사임했다. 대통령직에서.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탄핵의 위기에 몰린 뒤 1974년 8월9일 사임했고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그를 사면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사건의 전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다시 환기시키는 것은 이곳에선 거의 실종된 삼권분립의 원리나, 거의 말살된 언론의 기능을 재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을 재선시키기 위해 민주당 선거 본부에 잠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던 5인조가 체포되었다. 그 뒤 그들과 닉슨 재선위원회의 관계가 밝혀지고, 사건 은폐 기도가 발각되었다. 미국의 상원에서 연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의 공청회가 방송되었고, 거기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자동 녹음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대법원에서는 만장일치로 녹음테이프를 특검에게 넘겨주라고 판결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독자적인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닉슨은 사퇴했고 사면받았다. 그러나 사면은 유죄의 인정을 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지 사퇴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위대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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