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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 칼럼] 체벌금지 넘어 행복한 학교로

등록 2011-01-23 18:16수정 2011-01-24 08:55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가 체벌금지의 대안으로 간접체벌 허용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손발이나 매를 사용한 직접체벌은 금지하되,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돌기’ 같은 간접체벌은 학칙으로 정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 선언 이후 제기돼온 선생님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이었다고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대안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매나 벌로써 다스리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압니다. 벌이 효과를 내려면 박탈감이나 고통을 느낄 만큼 강해야 하고, 벌 받는 사람이 벌 주는 사람에게서 쉽게 도망할 수 없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자라면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체벌이 허용됐던 시절에도 교실붕괴 현상이 만연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간접체벌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효용이 낮은 간접체벌도 체벌인지라 체벌의 문제점은 오롯이 갖고 있습니다. 체벌은 당한 아이에게는 생생한 학습으로 경험돼, 인간관계에서 폭력이 정당한 것처럼 이해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10대 때 부모에게 매를 맞고 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배우자 폭행 비율이 4배 많고, 심각한 가정폭력을 경험한 남편들이 부인을 폭행하는 비율은 6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폭력적 환경에 노출되는 결과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체벌도 교실붕괴도 없는 학교를 만들려면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한번 우리 아이들의 처지를 돌아보십시오. 우리 아이들은 일찍이 유치원에서부터 입시공부의 늪에 빠져듭니다. 아이들에게 교실은 자발적 학습공간이 아니라 별다른 흥미도 없는 학습과제를 선생님의 통제 아래 무한반복해야 하는 곳일 뿐입니다. 30~40명의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강제로 재미없는 공부에 묶어두려니 교사는 수업시간의 75%를 벌을 주거나 규칙을 강제하는 일에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은 세계 최장시간 공부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청소년 5명 가운데 1명이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끔찍한 조사결과까지 나오겠습니까?

이런데도 과잉행동장애아·학습장애아·일탈학생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일탈과 반항 등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충족되지 못한 결핍과 좌절을 보상받으려는 노력이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게 만들려는 필사적인 시도입니다. 체벌금지나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교육계가 모처럼 이런 아이들의 호소에 귀기울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교과부는 이를 간접체벌이나 벌점제 등 또다른 통제방안 도입으로 무력화하려 합니다. 통제 이외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체벌도 교실붕괴도 없는 행복한 학교는 꿈이 아닙니다. 국내외 사례도 이미 여럿 있습니다. 대안학교뿐 아니라 삼우초등학교나 진안정보고 같은 공립학교에서도 가능했습니다. <한국방송>이 2006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마음’은 진안정보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천사처럼 소중한 존재로 존중하고, 아이들에게도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도록 격려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겨우 몇달 사이,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수업태도는 몰라보게 변했고, 급기야 학업성적조차 급상승했습니다. 미국의 대안학교인 프리스쿨에선 과잉행동장애아들에게 통제를 없애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게 하는 등 자존감을 높였더니 과잉행동이 사라졌다는 보고도 내놓았습니다.

이런 사례는 체벌 같은 통제 방식보다 아이들을 존중해 자존감을 높여주는 방식이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줄이고 학습성취도를 높이는 데 더 효과적임을 보여줍니다. 통제 없인 아이들을 다룰 수 없다는 관성적 사고를 벗어던지고 아이들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일, 그것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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