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노학자의 회한

등록 2011-01-17 21:02수정 2011-01-17 21:03

2차대전 당시 미국 전투기가 독일 기차를 집요하게 추격하며 기총소사를 했다. 조종사는 기차 안에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미군 포로들이 갇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열흘의 호송 끝에 포로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그들은 안도했다.

그중에 시드니 모나스가 있었다. 독일어가 능통한 그는 독일인들과 이야기하면 러시아계 유대인임이 알려질까 두려워 독일어를 모르는 체했다. 그러나 포로 한 명이 고열로 쓰러지자 어쩔 수 없이 독일어로 간수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그 뒤 모나스는 포로와 간수들 사이의 통역을 맡았다. 독일 장교 하나가 통역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유대인이라 신뢰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생애를 통틀어 단 한 번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부인했다.

이제는 은퇴한 학자인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텍사스대학교에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넘나들며 폭넓고도 깊이를 잴 수 없는 강의로 학생들을 매료시켰던 그는 6년 동안 권위 있는 학술지 <슬라빅 리뷰>의 책임 편집자를 맡기도 했다. 유대인이면서도 시오니즘에 반대하여 다른 유대인들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지금도 많은 미국인들이 그가 번역한 판본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그가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저작을 번역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도 말한다.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에 몰두하기엔 그의 관심사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일 것이리라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의 숨은 인재들을 서방에 알리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노학자가 아직도 자신의 ‘죄와 결함’ 때문에 회한에 시달린다. 자신의 정체를 부인한 그 한 번의 일 때문에.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1.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2.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3.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4.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5.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