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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아테네의 파멸

등록 2011-01-12 21:03

멜로스 전투 얼마 뒤 아테네 사람들은 시칠리아 원정에서 뼈저린 패배를 맛본다.

아테네의 지휘관은 원정을 수행하기에 그릇이 너무도 작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시칠리아를 과소평가했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테네에서는 해군력만 철석같이 믿었으나 결국 해전에서도 시칠리아의 전략에 농락당하며 완벽한 패배를 맛봤다. 군인들은 식량도, 대책도 없이 뭍으로 퇴각했다. 며칠을 그렇게 행군하면서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이 분열했다. 최후의 장면은 강둑에서 벌어졌다. 갈증에 목이 탄 아테네 군인들은 적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알더라도 상관하지 않은 채 물가로 달려갔다. 곧 강물은 핏물이 되었지만, 아테네 병사들은 여전히 앞다퉈 물로 달려가 그 물을 마시면서 죽어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시라쿠사 근처의 채석장에 인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고문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 자체가 고문이었다. 낮의 끔찍한 더위와 밤의 참혹한 추위에 별로 살아남지 못했다. 투키디데스는 그들의 비문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 할 수 있었던 일을 했던 그들은 인간이 겪어야만 했던 일을 겪었다.”

투키디데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친다. 우리에겐 지금 이것과 너무나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탐욕스럽고 그릇이 작은 지도자, 행정권을 갖고 있다고 그것을 개인의 권력으로 행사하려는 주변 인물들, 언어와 역사의 본질을 바꾸어 놓으려고 얕은 말장난으로 호도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을 뽑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운명.

나는 힘을 가진 아테네 사람들의 위협보다, 힘이 없어도 거기에 대항한 멜로스 사람들의 용기에 희망을 갖는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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