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서 역사가 무엇일까? 기록으로서 역사 자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역사학이 학문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은 기껏해야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돌려 말하면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집필한 기원전 5세기를 기점으로 무려 2300년 남짓을 기다려서야 겨우 역사학이 무엇을 왜 어떻게 연구하는지 밝혀진 것이다.
역사학파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역사철학자들이 그 일을 맡았다. 이들을 통해 역사학의 존재이유, 대상, 목적, 서술 방식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내려오고 있다. 딜타이는 역사학이 자연과학과 달리 정신과학의 위치를 가지는 것은 ‘의미’가 담겨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기 때문이며, ‘이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추체험함으로써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케르트는 역사학을 문화과학으로 분류하는 이유로서 ‘가치’를 통해 무수히 많은 과거의 사실로부터 중요한 것을 선별해내기 때문이라 논했다.
그런데 역사학에서 가치를 빼고 보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전제에 동의를 해준 바가 없는데, 스스로 논리를 펼치는 그들은 역사를 숫자 놀음으로 환원시켜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고 오도한다. 어떻게 도달한 역사학의 정체성인데, 가치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무례함이라니.
‘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한 그들에게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정책은 공식적인 제국 건설이 목적이 아니었고, 단지 상황의 변화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로널드 로빈슨과 존 갤러거나 제국주의란 근대화가 되어가는 불가피한 과정이니 도덕을 빼고 보자고 한 필드하우스가 그들이다. 아, 빠트릴 뻔했다. 그들은 영국 사람들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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