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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윤무

등록 2010-12-29 20:54

모든 작가는 섬세한 감수성을 갖고 읽어야지만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대다수의 작가는 그렇게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어떤 작가들은 묘미는커녕 오해와 불신을 산다. 세기말 빈의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그런 사람이다.

동시대의 동향인, 프로이트가 ‘우리들의 진정한 동료’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슈니츨러의 소설과 희곡은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윤무>라는 희곡이 재판에 회부됐다. 물리적인 행위로서 섹스를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열 개의 장마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하여 사랑의 행위를 벌인다. 그리고 한 장에 등장하였던 남자나 여자는 다음 장에 다시 등장하여 반대 성의 다른 사람과 성행위를 갖는다. 연극은 마지막 장에서 전장에 등장한 남자가 첫 장에 나오는 여자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순환을 이루기에 <윤무>이다.

<윤무>의 대사에서는 슈퍼에고와 에고와 이드가 경합한다. 그럼에도 단 한마디의 음란한 대사도 없이 빈 사회의 전반적인 위선을 드러낸 이 작품은 언어를 통한 소통의 불완전성이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린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첫 무대 공연이 끝나고 재판이 열렸다. 멋진 스타일리스트 슈니츨러는 이렇게 증언했다. “이 재판의 증언 속기록은 우리 시대에 대한 가장 멋들어진 풍자이다. 그 훌륭한 문서에 등장한 네다섯명의 인물은 최고의 풍자가라도 더 위선적인 작중인물을 만들기 힘들 만큼 위선의 전형이다.”

오늘날 성 개방을 찬미하기보다 타락한 사회에 사랑이 없음을 개탄하는 작품으로 <윤무>를 이해한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돌고 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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