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휴전은 없었다. 독일군이 참호 주변에 촛불과 크리스마스트리를 놓고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군도 따라했다. 큰 소리로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넨 그들은 ‘주인 없는 땅’, 총알과 포탄만 날아다니던 땅으로 나와 음식, 담배, 술, 단추, 모자와 같은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날 밤에는 포성이 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병사들을 묻고 함께 추모했다. 1914년 12월24일 서부전선 격전지 이프르였다. 정초까지 휴전이 이어진 곳도 있었다.
1차대전이 벌어진 뒤 첫 성탄 축일 “천사들이 노래했던 밤”만이라도 공식으로 휴전을 해달라는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요청을 양쪽 정부에서 무시했고, 약 10만명의 병사들은 그들 정부를 무시했다. 보고받은 영국 제2군단 사령관은 격노하면서 적군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비공식적 휴전을 없애기 위해 이듬해부터 크리스마스이브에 포병대에는 포격 명령이 떨어졌다. 포병들은 명령을 지켰다. 서로 약속한 듯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지점을 향해 발포했다-인명 피해를 주지 않도록.
1915년에도 캐럴이 울려퍼졌다. 캐럴이 돋운 선의의 분위기에 새벽에 양국 병사들이 참호에서 나와 인사를 주고받았고, 축구 경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프랑스군과 독일군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프랑스군의 와인·코냑·담배와 독일군의 햄·빵·비스킷이 만나 정찬을 이루었다. 전쟁이 끝난 뒤까지 우정이 이어진 일도 있다. 한 군인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하고 이상한 크리스마스였다”고 술회했다.
최후의 증인 앨프리드 앤더슨은 2005년 109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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