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루스 겔리우스는 2세기에 활동한 로마제국의 작가다. 아프리카 속주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추정되는 겔리우스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특히 그리스를 좋아한 그는 아테네에 오래 거주했다. 그 결과로 <아티카의 밤들>이라는 저작이 나왔는데,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지역에서 보낸 기나긴 겨울밤에서 제목을 따왔음이 확실하다. 일종의 비망록인데, 그리스에서 듣거나 읽은 범상치 않은 일들은 물론 역사, 철학, 문법, 기하학 등등의 잡다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주제에 따른 순서나 배열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일화를 전한다.
기원전 450년경 아테네의 군함 하나가 해가 질 무렵 에게해의 한 섬 근처에 정박하고 있었다. 해상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던 아테네는 다음날 아침 그 섬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함장 페리클레스는 기함에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부관을 초대한다. 고물 높은 곳에 차양을 쳐놓고 식사를 하던 그들 옆에서 아름다운 소년이 시중을 든다. 시종의 뺨에 비친 석양이 페리클레스의 시흥을 돋운다. 그는 ‘자주색’이라는 표현이 든 시를 인용한다. 부관은 그 형용사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피어오르는 젊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장밋빛’이 낫다며, 다른 시를 인용한다. 페리클레스가 반론을 제기하고, 그 저녁의 대화는 문학비평의 섬세하고 미묘한 논점으로 이어진다. 다음날 아침 바로 이 사람들이 현명하게 지휘하고 격렬하게 전투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무튼 용맹한 장군이 학식과 교양이 높은 신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한낱 꿈에 불과할까? 그래도 그 꿈을 꾸고 싶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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