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 독일의 극작가다. 그런데 그의 극에 환호하던 청중은 그가 그토록 타파하려고 시도했던 부르주아 계층과 자본주의 사회였다. 그의 희곡에 쿠르트 바일이 곡을 붙인 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는 특히 큰 성공을 거두어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남주인공 마키 메서의 대사에는 “먹는 것이 먼저요, 윤리는 나중”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적 결정론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경험을 토대와 상부구조로 나눈다. 그중 물질적 경험인 토대(또는 하부구조)의 변화가 중요한 요인이며, 정치·사상·도덕·문화 등의 상부구조는 토대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이것을 가리켜 “실존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동구권이 몰락한 뒤 마르크스주의도 함께 퇴색한 감이 있다. 그가 예견했듯 자본주의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에 자리를 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는 더욱 세력을 키우고 있는 반면 공산주의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유심히 보면 마르크스의 혜안이 오히려 돋보이는 사회가 된 것 같다. 정책 입안이나 학술 진흥 그 어느 구석을 보아도 경제를 잣대나 미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확실히 토대가 상부구조보다 선행하는 세계다. 마르크스에 대해 혐오감을 보이는 보수주의자들이 경제를 기준으로 행동의 지침을 삼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인다.
반공을 내걸면서 국가의 정책을 세우려면 마르크스를 거꾸로 매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윤리가 먼저요, 먹는 것은 나중”이라고 주장하면서 체면과 염치도 지키는 면모를 보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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