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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속) 스핑크스의 코

등록 2010-12-07 21:20수정 2010-12-07 21:22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관상학에서 코는 얼굴의 근본이며 자신을 상징한다. 특히 재산 운, 사업 운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니 관상의 핵심이다. 청춘남녀의 첫인상이 대개 눈과 이마 등 상정에 의해 결정되지만, 어른들이 다른 곳보다 코와 중정을 유심히 살피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코만 잘생겨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하니 다른 곳은 들러리다.

그런 코이다 보니 신체형이 자행되던 시대 코는 중범죄자에 대한 형벌의 대상이 되었다. 사형, 자자(문신)와 함께 조선조 3대 중형으로 꼽히는 게 의형(코 베기)이었다. 체통을 목숨처럼 생각하던 시절, 낯을 들고 다닐 수 없게 한 것이니 죽느니만 못한 신세였다. 궁형(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 월형(발뒤꿈치 힘줄을 자르는 벌)은 세상살이에 치명적이었지만, 코 베기보다는 양반이었다.

이런 코에 대한 관념이 서구라고 다를 리 없다. 그들에게도 코는 자존감과 기품 그리고 미의 상징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역사마저 뒤바꿀 정도의 마력을 부여했던 것은 그런 맥락이다. 사실 파라오 시대 수많은 신상과 조형물들의 코는 클레오파트라의 그것 이상으로 기품이 있었다. 그런 예술성과 조형적 상상력은 서구인의 문화적 열등감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작고한 리영희 선생은 지난 1996년 이집트를 다녀온 뒤 ‘스핑크스의 코’라는 제목의 짧은 수상을 <창비문화>(7~8월호)에 실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스핑크스를 포함해 이집트의 수많은 신과 왕과 왕비 석상들의 코가 대부분 잘려나간 것을 보고 쓴 글이었다. “중세에 이집트를 점령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창조했던 이교도 우상들의 생명의 원천인 ‘숨’을 끊어버리기 위해 석상들의 코를 모조리 깨버리고, 얼굴까지 뭉개버렸다.” 스핑크스의 뭉개진 코는 서구인의 종교적 적대감과 문화적 열등감이 빚어낸 반지성, 반문명, 독단과 무지의 상징이었다.

이런 행태는 서구 기독교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21세기 벽두 탈레반은 바미안 대불의 코가 아니라 석불 자체를 폭파했다. 미군은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유적과 유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종교적 적대감에서 비롯된 문명 충돌보다 더 어이없는 것은 다툴 이유가 없는 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행패다. 후진 정치권력은 일쑤 제 공동체의 빛나는 유산마저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후 지금까지 해온 가장 큰 사업은, 전임 정권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 결과 불과 3년 만에 우리 공동체의 자랑과 자부심으로 기록될 것들마저 뭉개버렸다. 스핑크스의 코를 뭉갠 것보다 더 야만적인 파괴였다. 거기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서해평화지대 설치안, 전시작전권 환수, 인권의 신장과 권력기구의 민주화 등 공동체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금자탑들이 포함돼 있다. 그것으로도 시원찮았던지 두 전직 대통령을 사지로 밀어넣었다. 코를 뭉갠 자리엔 선정비라도 세우듯 4대강 사업을 강압적으로 추진해 국토의 아름다운 ‘코’마저 뭉개버리고 있다.

이런 야만적 행태의 참혹한 결과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접적지역은 이제 실제의 전장으로 변해버렸고, 국민은 다시 전쟁의 위험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냉전의 광기는 각자에게 자기검열을 압박한다. 세대간 계층간 양극화로 말미암아 사회불안이 심화되고, 사찰과 감시 그리고 형벌권 남용은 공동체의 유대와 신뢰를 깨뜨리고 있다.

‘스핑크스의 코’는 종교적 독선이 빚은 파괴와 야만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호소한다. 이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을 회복하라는 것이었다. 이 호소는 지금도 유효하다. 비록 종교적 독선에 천민자본의 탐욕, 정치적 술수까지 결합된 악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게다가 그것만이 앞으로 남은, 권력의 내리막길을 구르지 않고 안전하고 현명하게 내려갈 수 있는 방법임에랴.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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