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초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물밀듯 침입했다. 로마제국도 붕괴시킨 그들 앞에 로마 가톨릭교회도 위태로웠다. 게르만 전사들은 이미 크리스트교로 개종했지만, 그들은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몰린 아리우스파의 신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가톨릭교회에 서광이 비쳤다. 프랑크족의 왕이었던 클로비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인접 게르만 왕국들을 장악하면서 교회의 수호자로 등장한 것이다.
그의 세례식에 주교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그의 몸에 성수를 뿌리고, “모든 민족들이 두려워하는 그의 머리가 신의 사도 앞에 숙여진 것”에 만족했다. 그를 칭송하고 그의 왕국 통치에 교회가 도움이 될 것을 약속했다. 곧 이 세례식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다. 세례에 필요한 성유와 성서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후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에 바로 이 기름이 사용되었고, 그것이야말로 프랑스 국왕이 가장 기독교적인 왕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프랑크왕국 초기의 기록을 남긴 수도승 그레고리우스가 전하는 그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그는 음모와 술수의 달인이었다. 근처 왕국의 왕자를 부추겨 부왕을 시해하도록 만들고는, 부하를 시켜 왕자를 살해한 뒤 부왕의 원수를 갚았다고 내세운 일도 있다. 적의 신하로 하여금 반역을 일으키도록 만들고는 그들을 반역죄로 내쳤다. 그는 왕위를 넘볼 친척들을 모두 죽인 뒤 “외롭구나. 도와줄 친척도 없이 홀로 남았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그 탄식조차도 거짓이었다. 더 죽여야 할 친척이 남아 있는지 떠보기 위해서였다.
프랑크왕국을 통일하고 서유럽의 기독교 교회를 지킨 역할로 널리 인정받는 그이지만, 결코 본받을 만한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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