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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슬픈 그들

등록 2010-11-29 21:18

17세기로 넘어가던 무렵 이탈리아 북동쪽 끝 프리울리라는 오지에서 일종의 이단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이상한 이야기를 해대는 한 무리의 농사꾼 남녀였다. 하는 이야기가 한결같진 않지만 거기에서 간추려낸 그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계절이 바뀌는 축일마다 혼만 몸에서 빠져나와 외딴곳으로 가서 회향 가지를 들고 수숫단을 든 마녀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들이 이기면 그해는 풍년이고, 지면 흉년이다. 그들은 아이들이 병에 걸리게 만든 마녀들과 싸워 아이들을 구해주기도 한다.

재판 기록을 검토한 역사가 카를로 긴츠부르그는 이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잔재이며,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퍼져 있던 샤머니즘의 한 모습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스스로를 베난단티라 불렀다. 벤+안단티로 나눌 수 있는 그 말은 ‘좋은 일을 하며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와 싸우며 가톨릭을 수호한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재판은 신과 악마의 대결 구도 속에서 이들의 위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던 교구 성직자의 고발에서 비롯했다. 이들의 신앙이 크리스트교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면 이들은 마녀가 되어야 했다. 오랜 감금과 유도심문을 겪으면서 이들의 정체성은 흔들렸다. 크리스트교를 수호하는 베난단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들은 혼란 속에서 막판에 스스로가 마녀인 것 같다고 무너졌다.

기껏해야 무당 노릇을 하며 가엾게 먹고살던 그들이 더 가여운 이유는 마녀라고 자인했음에도 방면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에게 피해를 입힌 일이 없음에도 범죄자가 되고 시간이 흐르며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이탈리아어 사전에서조차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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