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여러 면으로 특이하다. 직함으로서 프랑스 역사 최초의 대통령이자 최후의 황제였다는 경력부터 특이하다. 단지 나폴레옹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1848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대통령이 된 그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투표를 실시해 1852년 나폴레옹 3세로 등극했다.
행적 또한 특이함으로 가득하다. 첫 반란의 실패로 유배된 그는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을 흉내 내어 1840년 프랑스 해안에 도착했다. 고용한 군인 50명을 거느린 그의 머리 위에는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가 날았다. 그의 모자 속에 숨겨진 베이컨 조각을 노리는 길들인 독수리였다. 또다시 실패한 반란으로 종신형을 살게 된 그는 감옥 소속의 미장이와 옷을 바꿔 입고 영국으로 탈출했다. 아무런 정치적 역할도 하지 못했던 그는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의 영광을 바라는 국민들의 맹목적인 열광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고, 곧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우리 역사와 악연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그는 여러 후보 중에서 선출하는 선거가 아니라 정해진 후보에 대해 찬반을 물음으로써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독재를 합리화시키는 국민투표 방법을 전수해줘, 10월 유신의 선례를 제공했다. 원조 나폴레옹을 재현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였던 그는 우리나라까지 군대를 파견해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그러니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를 빗대 카를 마르크스는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일어난다는 헤겔의 말이 옳긴 하지만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코미디로 일어난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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