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뜻이 있다. 먼저, 서양사 전공자로서 ‘서양사람’(西洋史覽), 즉 서양사를 보자는 취지를 전하고 싶다. 지구화, 세계화를 강조하지만 역사 교육 중에서도 특히 세계사 교육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서양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커지길 바라는 가냘프지만 끈질긴 염원을 이 창에서 읽어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다음으로 ‘서양사람’은 역사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개인 자격의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대체로 역사학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에 초점을 맞춘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그렇지만 ‘신분’이나 ‘계급’처럼 집단을 가리키는 명칭 속에서 숨결과 혈기를 갖춘 개인의 삶이 매몰되는 경우가 흔하다. 문학비평가 아우어바흐는 “결국 우리가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 말이 문학 작품뿐 아니라 역사에서도 통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서양사람’에 담는다.
‘교훈’을 주는 일은 역사학이 갖고 있던 중요한 대중적 기능의 하나였다. 그런데 역사학이 학문적 엄정성을 추구하면서 교훈적 역사는 비하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역사학은 학자들만의 향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역사학은 본디 모든 사람들이 소유하던 공동의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다. ‘서양사람’을 통해 우리와는 동떨어진 시간과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뜨끔한 교훈적 통찰도 전달하려 한다.
격려뿐 아니라 질책과 비판도 기대한다. 이 미약한 목소리가 헛된 넋두리가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에.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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