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훈장은 더없이 명예스러운 것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나라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상징행위이기 때문이다. 훈장은 기원 전후의 로마에서 군인·우승자·시인 등에게 표장을 준 것이 시초이며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일반화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1900년(고종 37년)에 훈장조례가 처음 제정됐으며, 현재 상훈법에 따라 12가지 56등급의 훈장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훈장은 멋대로 남발되어 빛이 바랬다. 단적인 예로 1980년 신군부 주역들은 ‘광주사태’ 진압 공로를 내세워 제 손으로 훈장을 나눠 가졌다가, 뒷날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취소당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4년에는 한 해 4035명(하루 평균 11명)이 훈장을 받기도 했다.
훈장을 거부해 명분을 지킨 사람도 있다.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는 1996년 5공화국 인맥으로 분류되는 여성과 함께 국민훈장을 받는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와 모순된다며 거부했다. 감사원 비리를 고발한 이문옥씨는 1999년 정년퇴임 때 장기근속 공무원에게 주는 녹조근정훈장을 거절했다. 정부가 부패방지법 제정을 미루는 게 이유였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한테 무공훈장을 주려다 ‘전투참가 공적’ 기준에 미달하자, ‘접적지역에서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을 추가해 상훈법을 개정했다. 경계근무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경우라 ‘공적’을 논하기 어려웠지만 간편하게 법을 바꿔 버렸다. 정부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한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한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뚜렷이 기여한 자에게 수여’하라고 한 상훈법에 황씨가 해당하는지 아리송하지만 정부는 그냥 탄력적·실용적 방법을 찾을 듯하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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