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7월9일 천안함 사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의장 성명 이후 이 사태는 이른바 ‘출구’ 쪽으로 움직였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이 그랬다. 북한 외무성은 의장 성명 채택 하루 뒤인 7월10일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물밑접촉도 추진했다. 미국도 중국과 함께 북핵 협상 국면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북한의 핵폐기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천안함을 둘러싼 남북대결과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빗나갔다.
지난 5월24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대화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천안함 사건은 지역 안정에 심각한 도전”이라면서도 “천안함 사건에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앞으로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중의 전략적 협력은 갑자기 실종됐다. 천안함 때문에 미·중이 대립하고 있는 게 아니라 천안함이 미·중 갈등의 볼모가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11일 적절히 지적했듯이 최근 고조되는 남북한 긴장의 이면에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내지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천안함 조사결과를 수용하는가 아닌가에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영역에서 두 나라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내세우는 안전보장과 영토주권 요구는 매우 예민한 문제다. 중국의 패권에 대한 미국의 방어적 견제인지,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위협론에 근거해 초기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잠재적 경쟁자라는 전략으로 후퇴한 것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두 나라가 합의했던 전략적 협력관계가 위협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중의 전략적 협력관계는 더 큰 이익을 공유하고 있고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기에 나온 것이다. 갈등과 마찰은 좀더 다극화된 미·중의 공동패권적 질서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9월로 예상됐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가 미뤄졌다는 점에서 11월 미 중간선거까지는 미·중이 전략적 협력관계의 관점에서 이런 현안들을 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다.
그러나 천안함과 북핵 문제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이 보인 강경기조는 그 자체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태 이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기조는 제재와 대화의 투트랙 접근에서 제재를 확대함으로써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강조점이 바뀌었다. 미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출구전략을 논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과 모순된다. 그게 아니면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게 북한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 그리고 중국이 주장하고 있듯이 안보리 의장성명에 명시된 직접대화와 협상 대신 한-미 합동 훈련 등 무력시위와 제재에 매달리고 있는 건 미국과 한국이다. 미국이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선 천안함 해결 후 6자회담’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면 대화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클린턴이 지난 7월23일 아세안지역포럼에서 얘기한 건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킨다면 관계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선핵폐기론인 셈인데 부시 때보다 후퇴한 거 아닌가? 또 제재가 분풀이식 보복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전략이 되기 위해선 효과가 있어야 한다. 정작 미국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건 중국에 열쇠를 넘기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는 스스로의 입지만을 축소시킬 뿐이다.
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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