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바야흐로 안보의식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를 꾸짖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드높다. 텔레비전 방송으로 눈을 돌리면 전쟁을 소재로 한 대형 드라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다 6·25전쟁 60돌까지 겹치면서 국민의 안보불감증은 추방해야 할 병폐 1호로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했다가는 ‘다른 나라 국민’으로 내몰리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군 대장 진급 및 보직 신고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6·25 이후 60년 동안 휴전상태가 지속되면서 군과 국민의 안보의식이 해이된 점이 있지만 이는 ‘사회적 환경’이 만든 측면도 크다.” 천안함 사건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안보불감증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 대통령이 이미 수차례 했다.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 등이 국민의 안보의식을 해친 범인이라는 것도 이 대통령의 굳은 신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해지는 게 있다. 과연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얼마나 더 굳건했어야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안보의식에 투철한 국민으로 인정받으려면 평소 어떤 행동거지를 보여야 하는가.
안보의식이 투철하기로는 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을 따를 사람이 없다. 그는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중요한 순간’까지도 나라 걱정을 내려놓지 않는다. 원유값 급등에 추락하는 경제지표, 안보 불안 등에 대한 그의 수준 높은 걱정은 그때 더욱 빛을 발한다. 지금 정부는 ‘온 국민의 강안남자화’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먹고살기 바쁜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은 결코 그런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문제는 안보의식이 아니라 ‘직업의식’이다. 천안함 사건을 정부 발표처럼 북한의 소행이라고 치자. (다른 가능성을 눈곱만큼이라도 언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안보불감증 증세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북한 잠수함이 오는지 가는지 알 길이 없다. 24시간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아야 할 군이 사건 전후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는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겠다. 그것은 거창한 의식의 문제를 떠나 가장 단순한 직업적 책무의 문제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6·25 전쟁이 일어난 해를 모른다는 것도 개탄해 마지않는다. 심지어 군은 청소년들의 안보의식 향상을 명목으로 고등학교까지 찾아가 무기·장비 체험학습을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6·25 전쟁 발발 연도를 기억하는 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를 암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가 왜 애꿎은 청소년들의 역사 성적 문제로까지 번지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를 준엄히 꾸짖는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대부분 병역미필자들인 점도 보기 민망하다. 이것은 희극의 극치다. 그분들은 국민들을 혼내기 앞서 병영 체험 캠프라도 한번 체면치레용으로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경스러운 생각이 든다.
안보불안을 그렇게 외치더니 정부는 결국 미국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에 합의했다. “2012년 전작권 전환 계획에 변함이 없다”던 다짐은 역시 거짓이었다. 하기야 중요한 순간에 ‘술 취한 합참의장’을 생각하면 우리 군 수뇌부가 전작권을 돌려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가 이처럼 습관적으로 국민 뒤통수 때리기를 해도 괜찮은 것일까. 미국에 애걸복걸하면서까지 우리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또 무엇을 내주려는지도 걱정이 앞선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안보는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안보의식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첫번째 주체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위정자들이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국민의 안보의식 탓이나 하고 밀실 깜짝쇼를 벌이는 것이야말로 위정자들의 안보불감증 증세다. 안보의식 부족을 개탄해야 할 사람은 바로 국민들이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안보의식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첫번째 주체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위정자들이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국민의 안보의식 탓이나 하고 밀실 깜짝쇼를 벌이는 것이야말로 위정자들의 안보불감증 증세다. 안보의식 부족을 개탄해야 할 사람은 바로 국민들이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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