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군 지휘부가 상황을 조작하고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휘부는 사건 발생 시각을 멋대로 꾸몄으며 하급 부대한테 허위보고를 ‘주문’하기도 했다. 사건 초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줄도 모르고 “해군의 초동대응이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가 우스운 꼴이 되었다.
‘노무현 유고집’ <성공과 좌절>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군에 얽힌 씁쓸한 기억을 털어놓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안보 보고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남북 병력의 수, 항공기, 탱크, 기타 무기의 수를 단순 비교해 놓고 우리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훨씬 약하다는 도식적인 설명을 듣고는 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군의 계산법은 장비의 노후 정도와 위력 등을 고려하지 않는 이른바 ‘콩알 숫자 헤아리기’(counting beans) 방식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이전과 좀 다른 보고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국방부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보고를 받아보니, 여전히 이전에 들었던 것과 꼭 같은 내용이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경우를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무척 당황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보고회를 다시 열어서, 실질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분석모델을 개발하여 납득할 수 있도록 보고내용을 바꾸어 보라고 몇 번이나 강력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퇴임 때까지 그 지시는 잘 이행되지 않았다.
군은 폐쇄성 때문에 무슨 일을 꾸며내더라도 밖에서 알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군의 발표에 대해선 다른 집단에 비해 좀더 의심을 갖고 꼼꼼히 따지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참여연대가 군의 ‘천안함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완전히 거꾸로 된 일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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