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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MBC를 지켜주세요

등록 2010-04-13 20:58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한강에는 ‘M·B·C·를·지·켜·주·세·요’란 글자판을 건 오리배들이 등장했습니다. 정권의 <문화방송>(엠비시) 장악 기도에 맞선 엠비시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을 알리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오늘로 꼭 열흘째를 맞는 파업의 도화선은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지목한 김재철 사장이 천안함 침몰사건에 온 국민의 눈이 쏠린 틈을 타 강행한 인사였습니다.

김우룡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엄기영 전 사장을 밀어낸 뒤 후임 사장 선임의 최우선 조건은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선임한 뒤 “바로 불러서 대체적인 (인사)그림을 그려주고” “큰집이 불러다가 쪼인트도 까고 해서” 엠비시 내 ‘좌파’를 80%가량 척결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김씨의 자백 덕에 우리는 경영실적이 우수한 사장은 모두 날리고 그 자리를 고려대·공정방송노조 출신으로 채운 ‘문화방송 역사상 최악의 인사’라는 평을 받는 계열사 사장단 인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게 됐지요.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하며 신동아와 김씨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공언했던 김 사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 관심이 줄어들자 슬그머니 이를 접을 태세입니다. 사장이 송사에 휘말리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느니, 부관참시할 필요까진 없다느니 핑계를 대지만, 그 속사정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합니다. 소송으로 가 정권 차원의 추악한 엠비시 장악 음모가 드러날까 두려웠겠지요. 김우룡씨가 부랴부랴 외국으로 피신을 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명예회복 시늉마저 그만둔 김 사장은 한걸음 더 나갔습니다. “청와대와 김우룡이 엠비시 뉴스 장악을 위해 보도본부장으로 낙점했던” 황희만씨를 보도 라인에서 배제하기로 한 노조와의 합의를 뒤집고 보도·제작 총괄 부사장에 임명한 것입니다. 신경민 전 앵커를 중도탈락시켜 불신임당했던 전영배 전 보도국장은 기획조정실장으로 복귀시켰고요. 노조는 이를 엠비시에 대한 청와대 직할체제의 완성이라고 보고 전면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방문진 개편 이래 엠비시가 겪은 일은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한국방송>과 <와이티엔>이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 방송을 전유물로 삼기 위해 이 정권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하수인을 방송에 들어앉혔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얻은 이들은 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변질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그 결과 한때 신뢰도 1위였던 한국방송은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했고, 벌써부터 엠비시 뉴스도 흔들린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군사정권의 후예인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도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주장한 학자도 있었지만, 지난 2년간 언론현장을 위시한 우리 사회 각 부문의 퇴행은 그런 주장이 얼마나 섣부른 것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은 공정방송 하나 제대로 지켜낼 만큼도 굳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탄과 자책만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현장 곳곳에서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본권력에서 독립’을 내걸고 총파업을 결의했던 <에스비에스> 노조처럼 승리한 곳도 없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공영방송을 지키려는 엠비시 노조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의 구실이 긴요합니다. 김우룡씨가 자백한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낱낱이 밝혀내 이를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천안함이 이 중대한 언론쟁점을 휩쓸어가게 해선 안 됩니다. 유권자들 역시 공정방송을 지켜 각성된 시민이 될지, 방관해 여론조작의 대상으로 남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첫걸음으로 오늘 저녁 ‘엠비시 지키기 촛불문화제’에 동참해보지 않으시렵니까?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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