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편집인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무소유>(1993년판)가 110만원에 낙찰된 날, 쓴 침을 삼키며 둘러봤다. 기대하진 않았지만, <무소유>를 소유하는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6년 전 스님이 펴낸 <혼자 사는 즐거움>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심심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유치환의 ‘심산’) 표제시의 스님 글씨체는 여전히 정다웠다. 접힌 곳을 들춰보니 정채봉을 그리며 쓴 글이다. 열일곱에 시집와 열여덟에 그를 낳고 스물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못내 그리워하며 평생을 순정한 영혼으로 살았던 동화작가. 2001년 그가 어머니 곁으로 떠났을 때, 그의 사무친 그리움을 잘 알던 작가들은 유고집에 <스무 살 어머니>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마흔 넘은 나이에도 해 저물 녘 때때로 엄마의 산소에 가서 실컷 울었고, 묘지를 이장할 땐 제 나이 든 모습이 엄마 가슴을 아프게 할까, 머리에 검정물을 들이기도 했다. 두 살 때 사별했으니 엄마는 기억에도 없었다. 그런 엄마가 환상으로나마 어슴푸레 그 모습을 드러낸 건 유년시절, 할머니가 해송으로 지핀 군불 연기 속에서였다. 소년은 중2 작문시간에 그 기억을 글 ‘어머니 냄새’로 정리했고, 담임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할머니는 소년에게 기억 한 토막을 전했다. “해송 타는 냄새에 네 에미가 떠오르다니…. 허긴 너의 외가 가는 길이 솔밭길이긴 하다. 솔띠재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 찬 고개를 넘어야 했거든. 너를 업고 네 에미가 친정을 몇 번 다녔으니 그 솔냄새가 너의 모자한테 은연중 배었을지도….”(스무 살 어머니 2) 엄마는 그렇게 한순간 스친 냄새로도 기억되는가. 정채봉을 그리는 글은 이렇게 맺는다. “이다음 생에는 부디 덜 외로운 집안에 태어나 튼튼한 몸으로 이 생에 못다 한 일을 두루 이루기를 바라면서 명복을 빈다.” 잠시 감은 눈 앞으로 엉뚱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이제는 떠올리고 싶지도, 돌아보고 싶지도,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사람, 지상의 모든 흔적을 신속히 말소해버리고 싶은 사람. 길에서 태어났다 하여 길태라 불린 사람이었다. 중학 2년 어느 날 그는 길러준 엄마에게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물었다. 양엄마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가 받았지’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년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말수는 적어지고 웃음은 사라졌다. 고교에 진학했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출했고, 자퇴했으며,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이전까지 착하고 다정하며 활달한 아이였다고 양엄마는 기억한다. 중1, 2 학적부엔 남자답고 리더십이 있는 아이로 기록돼 있다. 영혼이 순결했던 시절이었다. 유년의 상처, 특히 엄마의 부재는 사춘기 아이들의 영혼을 일쑤 일그러뜨린다. 성폭력 범죄는 “어머니의 부재로 말미암아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이 충족되지 않아 생기는 적개심이 합쳐져 가학적으로 나타나는 현상”(허찬회 정신치료학회장)이라고 설명하는 이도 있다. 물론 진주조개처럼 상처에서 보석을 길러내는, 정채봉 같은 이도 많다. 유년의 상처를 우범시해선 안 된다. 다만 버려졌음으로 말미암은 상처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 막연한 복수심은 내면 깊숙이 똬리를 틀기도 한다. ‘레 미제라블’(불쌍한 것들)의 주인공들이다.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이제는 돌아보자. 길태라고 그런 간절한 그리움이 없었을까. 죄는 밉다. 그러나 ‘길에서 난 아이’의 고통과 슬픔도 함께 기억하자.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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