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기조는 지금도 그대로다. 무엇을 기다리나?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다. 북한 내부의 위기 심화와 북한 정권의 붕괴가 그것이다. 실제로 지금 북쪽은 힘들다. 경제·사회·국제·정치 등 여러 분야의 어려움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도 거의 전례가 없다. 북쪽이 이들 위기를 다루는 데 실패해 무릎 꿇고 손 벌리기를 우리 정부는 기다린다. 이런 기다리기 전략은 방관자적 태도와 무행동으로 이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에 부정적인 것은 물론이고 북쪽의 심각한 식량위기에도 무심하다. 미국과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놓고 북쪽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동안 우리 정부는 귀동냥하고 청부외교를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거론한 남북 정상회담도 기다리기 전략의 한 부분이다. 정상회담을 하려면 강한 추진력과 의제 조정 노력 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 안 어디에서도 그런 동력은 보이지 않는다. 외곽의 몇몇 분산적인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한반도 문제를 풀려고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정상회담을 거론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 대북정책의 큰 목표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핵문제를 풀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며 남북 교류·협력 강화를 통해 통일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그것이다. 북쪽의 개혁·개방도 이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목표들을 평화적으로 이뤄내는 것은 북쪽의 이해관계와도 어긋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이명박 정부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론은 전혀 걸맞지 않다. 기다리기 전략으로는 설령 북한의 위기가 심화하더라도 이런 목표들을 구체화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남북 사이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깊이 있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북한이 자신의 굴복과 붕괴를 바라는 상대에게 손을 내밀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교류·협력의 성과가 꾸준히 축적되지 않으면 이른바 급변사태가 발생해도 남북 협력은커녕 긴장이 고조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북쪽이 중국과의 경협 강화에 애쓰는 것은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의 북-중 경협 움직임은 이전과 양상이 크게 다르다. 우선 규모에서 전면적이다. 북쪽은 이미 경협계획이 발표된 압록강 하구 개발과 나진 말고도 평양·사리원·김책 등 여러 곳에 ‘개방형 공단’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고 한다. 대부분 중국 자본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근 설립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과 국가개발은행 등도 중국 자본 유치가 핵심 목표다. 중국 쪽 태도 또한 과거와 차이가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대북 투자 지원·독려가 두드러지며, 특히 동북3성 기업들이 적극적이다. 대북 영향력 강화와 동북지역 발전이라는 뚜렷한 국가전략이 경협으로 구체화하는 양상이다. 이런 노력이 꾸준히 지속되면 머잖아 북쪽과 중국 동북3성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일 것이다. 한반도의 절반씩을 차지한 남북이 대립해 서로 갉아먹는 동안(0.5×0.5=0.25), 중국은 동쪽으로 더 커지는 구도다. 정부는 여기서도 방관자다. 멀찌감치 물러서서 북-중 경협이 잘 안될 이유들만 애써 강조한다. 기다리는 전략의 부작용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를 지나면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지고, 핵문제를 풀려고 해도 장애물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그 출발점은 별 반성 없이 기존 관성 속에 안주하는 통일·외교팀에 대한 인적 쇄신이다. 표범이 가을에 털을 한꺼번에 바꾸듯이 모든 변화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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