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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행복지수가 두려워서야

등록 2010-01-31 20:44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민행복지수 개발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소득·고용·교육·주거·안전 등 5대 민생분야를 아우르는 지수를 연내 개발해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지표로 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수 개발이 중단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권에 도움이 될 게 없다는 당국의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런 우려는 당연해 보입니다.

그동안 국제적인 행복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중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2008년 미국의 ‘세계 가치관 조사’(월드 밸류스 서베이)의 주관적 행복도 조사에선 100개국 가운데 62위였습니다. 영국 레스터대학이 경제상황, 의료제도, 교육 등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해 2006년 발표한 행복지도에서도 178개국 중 102위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순위가 30~40위권인 점을 고려하면 행복도가 훨씬 떨어지는 사회인 것이지요.

국민행복지수 개발이 기대를 모았던 것은 경쟁 중심의 성장일변도 사회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단해버린다면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정권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복을 삶의 주요 가치로 인정할 때 두 조사에서 모두 1위를 한 덴마크란 나라는 연구해볼 만합니다. 인구 1000만명도 안 되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인 덴마크는 북해의 유전을 빼고는 특별한 부존자원도 없고, 우리나라 못지않게 대외의존도도 높습니다. 고용의 유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노동자들은 생계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갑니다.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철저한 직업복귀 교육으로 쉽게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면 거의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고, 고령자에 대한 사회부조 시스템도 거의 완벽합니다.

물론 이런 혜택을 얻기 위해 덴마크인들은 소득의 절반가량을 직접세로 내고 25%의 소비세까지 부담합니다. 이 때문에 덴마크는 고복지·고부담 사회라고도 하지만, 덴마크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세금이 국민 모두에게 환원되므로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는 거지요. 실제로 세금의 75%는 교육·의료보장·복지 등으로 국민에게 되돌아갑니다.

일본에서 나온 <세계 제일 행복한 나라 덴마크가 사는 법>이란 책은 그 비결을 교육에서 찾습니다. 유아원 아이들은 모두 집에서 간식을 가지고 가지만, 그것을 먹을 때는 모두 모아 함께 골고루 나눠 가집니다. 또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 기간에는 시험이 없고,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 토론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뤄집니다. 바로 이런 교육이 경쟁보단 연대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문화는, 어느 정도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 후엔 사회적 형평성과 연대감이 행복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에 부합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덴마크가 복지제도의 근간을 마련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때입니다.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이지요. 이후 제도의 퇴행을 막은 것은 90%대의 투표율로 상징되는 국민의 높은 정치참여율입니다. 자신의 권리에 민감한 국민이 자신의 행복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지난해 자본주의의 타락상을 고발한 영화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를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민주주의에 책임을 지라는 것,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가의 주인으로서 자신과 사회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 민주주의도 행복한 나라도 가질 수 있다는 그의 주장, 맞는 말 아닙니까?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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