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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여당이 믿는 건 민주당뿐?

등록 2009-12-13 22:17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계절풍인가. 다시 바람이 분다. 비릿한 냄새도 나고, 금속성도 들린다. 계절도 그렇고 풍향 풍속도, 머금은 습기도 온도도 그때 그 바람과 닮았다.

지난해엔 한상률 국세청장이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보고한 11월 어느 날 이후 일진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세종증권이 압수수색 당하고 태광실업이 고발당했다. 노건평씨가 구속된 건 12월4일이었고, 직후 박연차도 구속·수감됐다. 전직 대통령의 측근과 가족들이 추풍에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파렴치 혐의로 소환됐다. 그가 끌려간 빌미는 ‘그를 보고 돈을 줬다’는 박연차의 한마디였다. 검찰, 정보기관, 친정부 언론의 암수는 집요했고,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 박연차 역할을 하는 건 인사청탁과 함께 돈질을 했다는 곽영욱씨다. 구속되고 얼마지 않은 11월 중순 검찰에서 했다는 그의 진술이 언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때 당정의 핵심 3인의 이름이 시중에 유포됐다. 펄쩍 뛰던 검찰은 12월 초 <조선일보>가 한명숙 전 총리를 실명으로 적시한 이후 태도가 돌변했다. 친정부 언론과 검찰의 플레이는 1년 전 그때와 판박이로 진행됐다. 흘리고 보도하고 확인하고, 또 흘리고 보도하고 확인하고…. 정치권까지 나서서 믿거나 말거나 투의 가족 관련 의혹까지 유포했다. 표적을 압박하는 수법마저 동일했다. 마찬가지로 여권 인사를 들러리 세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되풀이될까. 아직도 화장터의 온기는 남아 있고, 그때의 절규 또한 귀에 쟁쟁하다. 게다가 세종시, 4대강, 언론관련법, 노동자 짓밟기 등 하는 짓마다 비웃음 혹은 분노만 산다. 도대체 무얼 믿고 그러는 걸까.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 말이다. “세종시? 그거 퇴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누굴 자르고 퇴각하느냐만 남았다. 4대강? 각 지자체는 4대강 때문에 다른 사업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재집권? 물론 불안하다. 그러나 믿는 게 있다. 민주당이다. 워낙 약체니까.”

왜 약체냐고? 그걸 묻는 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고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용산참사 323일째 되던 날. 글은 거침없고 가슴을 찔렀지만, 낭송 실력은 형편없었다. 192명의 글쟁이가 다듬은, 그 짧은 선언을 읽는 동안 목소리는 끊기고 엉켰다. 한 사람은 심지어 한 줄 읽고 흐느끼고, 한 줄 읽고 오열하다가 끝내 엉엉 울어버렸다. 오열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글의 내용은 이랬다. “비정한 나라에, 무정한 세월이 흐른다./ 이 세월을 끝내야 한다. …” 기적 같았다. 아직도 이렇게 진한 눈물이, 고통이 그리고 분노가 남아 있다니. 그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망루를 불태운 것은 우리였다. … 우리는 원고인 동시에 피고인이다.”

한나라당이 왜 민주당만 믿는지, 이래도 모를까. 오갈 데 없는 이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나, 망루로 올라가고, 거기서 불에 태워질 때, 민주당은 그들 곁에 없었다. 그렇게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남은 이들이 중죄인 되고, 그 가족이 거리에 버려져 있어도, 뒷걸음만 쳤다. 철거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죽인 정권이 서민정권 운운하는 블랙코미디 속에서도 대꾸할 게 별로 없다.

알다시피 참사 이후 죽임과 죽음은 잇따랐다. 두 전직 대통령이 졸지에 갔고, 노동자와 그 가족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철거민의 죽음은 계속된다. 민주당은 원고가 아니다. 피고다. 이미 그들에 대한 역사 법정의 판결은 내려졌다. 도둑이 들어도 짖지 않고, 칼 든 자 앞에서 꼬리 치는 개라면 없는 게 낫다. 게다가 지분 좀 있다는 이들은 다 파먹은 김칫독을 놓고 싸우고 있다.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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