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세종시 갈등이 갈수록 악화한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오히려 불쏘시개가 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무효화를 관철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에 비례해 반발도 거세진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여론은 이미 고착됐고, 앞으로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질 것이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종시 건설이라는)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는 등의 말장난식 변명(정운찬 총리)은 사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다. 4대강 사업은 더하다. 원안 추진에 동의하는 국민은 여전히 30% 밑이다. 애초 세금을 한푼도 안 쓰겠다던 사업이 22조원짜리 괴물이 된 것만 해도 당찮은데, 이 대통령은 ‘찬반 대상이 아니다’라고까지 한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독재의 논리다.
그뿐만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공공노조 죽이기에 나선다. 노동문제가 격화하는 건 당연하다. 집권 초기부터 시작된 방송장악 시도가 이제는 대통령 측근의 <한국방송> 사장 투입까지 갔다.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겠다며 외국어고 폐지 문제를 꺼냈다가는 기득권 세력이 반발하자 맥없이 물러선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한 행정구역 통합은 태산명동서일필 격이다. 교육적 관점에서 치밀하게 논의돼야 할 취학연령 인하 문제를 저출산 대책에 끼워넣어 발표한 것 역시 한건주의의 전형이다. 최근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이례적인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 정책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지 오래다.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정부가 내놓는 주요 정책마다 갈등과 분란을 유발하고 국민 반대가 클수록 더 거세게 밀어붙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모순이 누적되면 머잖아 폭발하게 돼 있다. 이 대통령은 미래를 내다본다지만 실제 행태는 과거와 아주 닮았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집권기와 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 말기와 유사하다. 두 시기 모두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정치는 제 기능을 못하던 때다. 당시에도 두 대통령은 나라를 위한다며 저돌적으로 나갔다.
물론 이후 과정까지 똑같지는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의 반발에 긴급조치라는 몽둥이로 대응했다. 9호까지 진행된 긴급조치 시대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났다. 토건경제의 원형을 만든 그가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이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비해 전두환 정권을 뒤이은 노태우 대통령은 타협노선을 추구했다. 그의 집권 동안 국민연금제가 실시됐고 최저임금제가 정착됐으며 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확대됐다. 북방정책을 추구해 소련·중국과 수교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 그는 ‘물태우’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우리 현대사에서 일정한 구실을 했다.
이 대통령은 우선 한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힘이 있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나라가 골병이 든다. 착각과 오만이 소명이라는 말로 합리화될 수는 없다. 그가 정말 자신의 말대로 중도·실용과 국민통합을 추구한다면 갈 길은 이미 나와 있다.
우선 국토 균형개발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세종시 문제에서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이제까지 해온 정책들이 수도권 중심이었던 데 있다. 수도권 집중 완화와 균형개발에 대한 정책부터 먼저 내놓는 게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다. 4대강 사업은 속도를 줄이고 대안을 깊이있게 검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규모를 축소해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른 정책들도 우선순위를 세워 국민의 합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설익은 아이디어를 불쑥 내밀어서는 신뢰만 갉아먹는다. 교육·복지·노동·언론 관련 사안들이 특히 그렇다. 이 대통령에게는 아직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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