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지난 5월, 우리 곁을 돌연히 떠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란 책으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의 육성이 담긴 이 책을 읽노라니 가슴 한켠이 아렸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국가가 할 일을 치열하게 물었던 그가 스스로를 ‘불행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라는 그의 한탄에는 힘없는 보통 사람을 위한 대통령이고자 했으나 거기에 이르지 못한 회한이 서려 있습니다.
‘불행한 대통령.’ 이 말이 더욱 아리게 다가온 것은 외신으로 전해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성공 스토리 탓도 있습니다. 7년차 대통령으로서 임기 1년을 남겨놓은 룰라에 대한 지지도는 80%나 됩니다. 브라질의 서민층은 구두닦이에서 대통령이 된 그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같은 계층 출신일 뿐 아니라 그의 집권기간 중 그들의 살림이 확연히 피었고, 나라의 위상 또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1995년만 해도 브라질은 인구의 1%가 국토의 45%를 차지하고, 37%인 농민은 1% 미만의 땅만 가질 정도로 빈부격차가 컸습니다. 그러나 룰라가 집권한 2003년에서 2008년 사이 전체 인구의 10%인 2000만명가량이 빈곤 탈출에 성공해, 빈곤층 비율은 28%에서 16%로 줄었습니다. 97년 부도 위기에 몰렸던 나라가 이젠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빌려주고 세계 5위 경제대국을 꿈꿉니다.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도 유치했고요.
이런 성공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자원 부국으로 원자재값 상승 효과도 봤을 거고요, 전 정권이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수습해놓은 덕도 봤겠지요. 그러나 그의 리더십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룰라는 노동자당 출신 대통령임에도 급격한 사회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전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을 그대로 승계해 2년 만에 흑자 재정을 만들었고, 예정보다 2년 앞서 국제통화기금에 진 빚을 모두 갚아 시장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한편 ‘보우사 파밀리아’라는 브라질 역사상 최대의 재분배정책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학령아동이 있는 빈곤층 가구에 월 200레알(약 13만원)을 나눠주고 학생들에겐 무료급식을 제공했습니다. 전체 국민의 4분의 1이 수혜자가 된 이 정책 덕에 동북부 빈곤지역에는 상점이 생기고 소기업이 일어나는 등 자체 성장동력이 마련됐다고 합니다. 유엔개발계획은 이 정책이 브라질의 불평등지수를 2001년에 비해 20%나 개선했다고 평가합니다.
그의 성공 스토리에는 행복한 대통령의 비결이 보입니다. 그는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에 최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기아 제로’ 정책처럼 전임자의 정책을 이어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빈곤 퇴치와 공정한 분배 같은 문제는 시장에 맡겨놓을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과감히 이행하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스스로 불행한 대통령이라 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행복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나 행태를 보면 가능할지 의심스럽습니다. 세종시 예에서 보듯, 전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뒤집고, 토건사업에 올인하느라 갈수록 피폐해지는 서민들의 삶을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쯤 행복한 대통령을 둔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을까요?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자기 생활상의 이익을 이해하고, 정책과 자기 이익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얘기하는” 시민이 될 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내년 지방선거부터 우리의 ‘작은 룰라’를 선별해내는 일, 그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요?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