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편집인
죽음 앞에서 성찰한 삶의 진실은 선인과 악인, 현자와 천치 간에 차이가 없다.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자살 전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면,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은 일찍이 고운(외로운 구름)을 호로 삼았다. 물소리 자욱한 홍류동 계곡 너머로 사라져 신선이 되었다는 고운의 구름과, 흉악범 정남규의 구름을 동렬에 놓을 순 없다.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깨친 진실을 두고 진정성을 시비하는 것은 점잖지 않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진술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가 본 삶은, 제 뜻과 무관하게 태어나 온갖 욕망과 충동 등 맹목적 의지에 휘둘려 살다가, 자신은 물론 이웃을 괴롭히다가 떠난다. 삶은 덧없음 차원을 떠나 그 자체로 오류다.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죄이고, 태어났으면 일찍 죽는 것이 행복이고, 일찍 죽지 못한다면 자살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금도 청춘의 한때를 흔드는 이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왔다. 반인반수의 신 사티로스는 삶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첫 번째 진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진리는 태어났으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행복하다.’ 주색잡기에 전념하는 사티로스가 한 말이니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런 잠언을 찾으러 서양철학사나 그리스 신화를 뒤지는 건 시간낭비다. <삼국유사>는 사티로스보다 더 우아한 잠언을 남긴 사복이와 원효대사의 설화를 전한다. 신라인 사복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원효대사에게 천도를 맡긴다. 원효는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롭고,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롭다”는 내용의 설법을 길게 했다. 그러자 사복이는 불쑥 “말이 너무 번거롭다”고 힐난했고, 원효는 곧 이렇게 정리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움이라.”
쇼펜하우어와 사티로스, 원효와 사복이의 말은 자살 예찬이 아니라 사실은 행복론이다. 쇼펜하우어는 불행의 근원인 맹목적인 의지와 단절하고, 욕망과 집착에서 자유로워(해탈)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원효와 사복이는 심지어 생사의 관념마저도 털어버리라고 가르쳤다. 정남규는 다른 메모에서 “초등학생 때 성폭행만 당하지 않았다면…”이라며 아쉬워했다. 유년기의 상처로 말미암아 그는 분노와 적개심에 갇혀 복수에 집착했던 셈이다.
물론 집착은 집념과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일군 성공신화는 그의 집념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자신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불가능이 확인될 때까지 계속 밀어붙였다. 번복과 수정은 있지만, 포기는 없었다. 대운하 변형판인 4대강 사업, 세종시 폐지 문제는 대표적이다.
그러나 김인규 <한국방송>(KBS) 사장 임명 문제에 이르면 그것이 집념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다. 김씨는 케이비에스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이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방송정책을 총지휘했다. 그런 그를 사장에 임명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권력을 총동원해 정연주 사장을 쫓아냈다. 이런 행위가 법원에 의해 위법부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그는 임명을 강행했다. 집착의 전형이다. 세종시 폐지 및 4대강 사업의 진행도 그런 과정을 밟고 있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쥔 손을 놓지 않다가 사냥꾼에게 붙잡힌다. 원숭이의 집착은 제 명만 재촉하지만, 대통령의 집착은 국민과 국가를 불행으로 이끈다. 조만간 대통령이 세종시 관련 입장을 발표한다고 한다. 손을 놓기 바란다. 세종시는 국회가 의결한 법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니, 국회에 맡기는 것도 손을 놓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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