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급반전할 계기를 맞고 있습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미국과 북한의 직접 접촉이 이뤄지고 일본의 새 정부도 대북 관계를 개선할 뜻을 밝혔습니다. 현 정권 등장 이래 갈등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남북한 사이에도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접촉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요. 한반도에 다시 대화의 봄이 시작될 듯합니다.
지난 17일부터 중국 지린성 옌볜(연변)대학에서 열린 두만강학술회의에서도 한반도 상공을 짓누르던 차가운 공기가 물러날 조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한과 중국 및 일본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 북한은 사회과학원장을 포함해 16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각 분과회의에 골고루 들어간 북한 참석자들은 주제발표나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했을 뿐만 아니라 좀 거북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두만강개발계획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두만강 유역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아의 수송과 무역의 중심지이지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경제적 잠재력에 주목해 1992년부터 유엔개발계획(UNDP)을 중심으로 대삼각(연길-청진-블라디보스토크 1만㎢) 또는 소삼각(훈춘-나진·선봉-포셰트 1000㎢) 지역을 다자간 협력으로 개발하는 방안이 모색돼 왔지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유엔디피는 2005년 두만강지구 발전계획의 10년 연장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중단상태라는 게 정확한 진단입니다. 그렇게 된 데는 이해관계 조정의 어려움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관련 당사국인 남북한이 아직도 냉전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탓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은 독자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800억위안(약 50조원)을 투입할 ‘신두만강개발계획’이 중앙정부 총리의 서명만 남겨놓은 상태라고 리중린 옌볜대학 교수는 전합니다. 계획에는 창춘-지린-투먼 경제벨트 구축과 투먼-창춘 간 고속철도 건설 및 지린과 북한의 나진·선봉 및 청진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이 포함됩니다. 훈춘에는 연산 1000만t 규모의 정유공장도 건설할 계획입니다.
리 교수의 설명을 들은 북한 학자들은 중국 쪽의 개발 의지에 촉각을 세웠습니다. 중국 쪽의 의지가 확실하다면 북한 쪽 역시 적극 협력할 뜻이 있다면서요. 북한 대표단과 별도의 모임을 가졌던 옌볜대학의 한 교수는 태형철 사회과학원장이 두만강개발계획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했다며, 평양에 돌아가 자세히 보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습니다.
북한이 이렇듯 적극적이면 두만강유역 개발은 북한의 협력을 얻은 중국이 주도할 것입니다. 이 경우, 북한의 중국 경제권 편입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달 초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두 나라는 폭넓은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새 압록강 철교도 중국이 건설해주기로 했지요. 나진·선봉·청진 등 물류수송로와 더불어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 확보는 지린성을 비롯한 동북 3성 개발에 긴요하기 때문입니다. 북-중의 이런 접근을 두고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될지 모른다는 기우까지 터져나올 정도입니다.
남북한의 통일된 미래를 생각할 때 북-중 관계의 지나친 밀착은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두만강 유역이 한반도와 영토 및 역사를 둘러싼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지역임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일은 더욱 아닙니다. 북-중 밀착에 대한 기우를 기우로 끝내려면 잠자고 있는 두만강개발계획을 ‘새로운 평화의 기획’으로 되살려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적극적인 대북 관계 개선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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